"1981년 성철(1912~1993)스님이 돈오점수(頓悟漸修ㆍ단박에 깨친 후에도 계속 닦아야 한다)를 비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ㆍ단박에 깨달은 뒤에는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를 주장하면서 촉발된 '돈점 논쟁'은 한국 불교를 이해하는 관문으로 삼을 만합니다."
푸른 눈의 가톨릭 신부가 '가야산 호랑이' 성철스님의 선사상을 설파했다. (서강대학교출판부 발행)라는 책을 통해서다.
그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으로 현재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있는 서명원(본명 베르나르 스네칼ㆍ60) 신부. 예수회 소속 신부이면서 불교의 진리 탐구에도 천착하고 있는 서 신부를 16일 서강대에서 만났다.
서 신부는 "지난해가 성철스님이 탄생한지 100주년이었고, 올해는 스님이 입적한 지 20주년"이라며 "한국 불교 역사상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선승인 성철스님의 선사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 일조하기 위해 책을 펴내게 됐다"고 밝혔다. 서 신부가 지난 20여년 동안 성철스님을 연구하며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던 논문 가운데 6편을 골라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몇 번을 고쳐 출간했다.
보르도의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1979년 사제의 길에 들어선 그가 1993년 1월 성철스님이 머물던 해인사를 찾아갈 때만 해도 '한국 불교의 거목'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불교에 문외한이었다. 얼마 뒤 성철스님이 일으킨 돈점 논쟁에 관한 논문을 읽으면서 한국불교의 진수에 눈을 떴다. 2004년에는 파리 7대학에서 '성철스님의 생애 및 전서(全書)'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2005년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임명된 뒤 지금껏 성철스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국내외에 다양한 논문을 발표해왔다.
서 신부는 현재 한국불교가 송나라 때 선사 대혜종고(1089~1163)가 제창한 명상 수행법인 간화선(화두 위주의 참선)에만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저 자신도 96년부터 간화선 수행을 하고 있지만 '우리 수행법만이 정통이야'라고 독불장군식으로 외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간화선이 좋은 수행법이라는 것은 맞지만 옛날 전통만 고집한다면 곧 외면당하고 뒤처지게 될 것입니다. 최근 미얀마 등의 남방불교에서 유래한 위파사나 명상법이나 중국 티베트 불교의 명상법이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
그러면서 서양인들에게 한국불교를 어필하려면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하루 16시간 꼬박 가부좌를 틀고 화두 참구만 하는 수행은 외국인들에게 너무나 힘들지요. 서양인들의 생활 습관에 맞게 좀 더 편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최대 불교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에도 쓴 소리를 마다지 않았다. "한국에서 구도심이 강하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스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얼마 전 '한국불교는 몽키 비즈니스(협잡)'라는 제목의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사에서 보듯이 현재 한국 불교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크게 개혁하지 않는다면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지요." 말투로는 한국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노신부의 말에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 나왔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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