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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17일]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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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17일] 빈집

입력
2013.12.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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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쯤 집을 비우게 되었다. 짐을 꾸리고 집을 정리하느라 부산스럽다. 구석구석 쓸고 닦고 책상 위에 잔뜩 어질러놓은 물건들도 하나하나 제자리에 돌려놓고 있다. 고작 한 달에 뭘 또 그렇게까지… 싶으면서도 유난을 떤다. 아무도 없는 우리 집에 불시에 들어올 사람이 있을 것 같은 기분 탓이다. 누굴까.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그럴 리는 없으니 빈집털이 쯤 될까. 혹은 그 비슷한 누군가. 언젠가 미행을 즐기는 남자에 대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남자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음에 꽂힌 사람의 뒤를 밟곤 한다. 그 사람의 집을 알아두고 집이 비는 시간을 점검한 다음, 부재를 틈타 몰래 들어간다. 냉장고와 옷장과 빨래바구니를 들여다보며 집주인의 삶을 재구성한다. 비치된 책이나 CD를 통해 취향도 가늠해 본다. 그리고 기념으로 작은 물건 하나를 훔쳐서 나온다. 취미 삼아 하는 일이다. 그가 우리 집에 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의 물건들과 흔적들로 몽타주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재조립된 나의 일상은 어떤 것일까. 이후로 집을 오래 비울 때는 문단속만큼이나 정돈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이 '미지의 탐색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랄까. 살던 상태 그대로 그를 맞게 된다면 민망할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제 오랜만에 말끔해진 집을 보고 있자니 어디 초청장이라도 보내고 싶어진다. 한 달 후 집에 돌아오게 되면 나는 어떤 손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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