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으로 빈곤층은 줄지 않는데도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오히려 매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양의무자의 소득ㆍ재산을 수시로 파악할 수 있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사통망) 도입으로 수급자 자격 심사는 엄격해진 반면, 정부의 빈곤층 구제 노력은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11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는 138만5,040명으로, 2004년(142만4,088명) 이후 최근 10년간 최저다. 수급자 수는 2009년 156만8,533명을 정점으로 2010년 154만9,820명, 2011년 146만9,254명, 2012년 139만4,042명으로 5년째 감소하고 있다.
반면 중위소득(전체 인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사람의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인구비율인 상대빈곤율은 2007년 14.8%, 2008년 15.2%, 2009년 15.3%, 2010년 14.9%, 2011년 15.2%, 2012년 14.6%로 큰 변화가 없다. 빈곤에서 벗어난 사람이 많아 수급자가 줄었다면 반가운 일이지만, 빈곤율 통계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당국은 수급자수가 감소하는 주된 요인을 2010년 사통망 도입으로 국세청, 지방자치단체 등 40여개 기관이 보유한 소득ㆍ재산 자료가 수시로 제공돼 부양의무자의 소득 파악이 용이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수급자 본인도 잘 모르고 있던 부양의무자의 소득 등 정보 조회가 수시로 가능해지면서 탈락하는 수급자가 늘었다"고 밝혔다.
부정한 수급자를 가려내는 판정은 엄격해졌지만, 실제로 빈곤한 가구에 혜택을 주려는 당국의 의지는 미약하다. 복지부는 지난해 1월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한해 수급 대상 소득기준을 수급자와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합쳐 최저생계비의 130%(부양가족 4명 기준 275만원)에서 185%(392만원)로 높인 뒤 2년 동안 제도를 손질하지 않았다.
시민단체ㆍ빈곤단체 등에서는 아예 부양의무자의 유무 및 소득 수준 등을 따지는 제도 자체를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복지부는 내년 10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에 맞춰 이 기준을 440만원대로 높인다는 계획 정도만 내놓고 있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생계비, 의료비 지원 등을 모두 받는 수급자에게 수급자격 박탈은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같다"며 "복지부가 시행령만 고치면 수급 기준을 높일 수 있는데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올 9월 부산에서 신부전증 치료를 받던 50대 남성이 딸의 취직으로 수급자에서 탈락하면서 월 100만원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정부가 적극적인 빈곤층 발굴ㆍ구제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이같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수급자는 계속 나올 수 있다.
허 교수는 "전산망에서 파악 가능한 자료는 늘고 있지만 빈곤층을 발굴ㆍ구제하는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기초생활제도 개편 전이라도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완화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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