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촌에서 일했던 김모(70) 할머니는 경기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의 다 쓰러져가는 단층집 방 한 칸이 유일한 안식처다.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 맞은편 골목에는 갈 곳이 없어 떠나지 못한 같은 처지의 할머니 수십 명이 거주한다. 그런데 최근 평택 미군기지 확장으로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집들이 하나 둘씩 허물어지고 있다.
'산업역군'으로 불리며 국가의 통제 아래 미군에게 젊음을 바쳤지만 여전히 푸대접을 받고 있는 '기지촌 여성'에 대한 지원법안 제정 움직임이 처음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김광진 민주당 의원실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16일 국회에서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가칭)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15일 밝혔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1945년 9월 이후 100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기지촌에서 미군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는 전무했다. 특별법은 기지촌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들 자녀들의 사회ㆍ경제적 상태는 어떤지 등을 조사해 명예회복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하자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앞서 자국민 보호책임이 있는 우리 정부도 과거의 일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1년에 100달러 벌기도 어려웠던 시절, 한 달에 100달러를 벌어들이며 산업 발전의 기틀을 놓았다. 공창제가 폐지된 후에도 정부는 강제로 기지촌 여성들에게 성병 검사를 받게 했고, 성병에 걸리면 법적 절차 없이 진료소에 강제 구류할 정도로 집요하게 통제했다. 성병이 미군의 전투력을 떨어뜨리면 한반도 안보가 위험해진다는 논리였다.
1960년대까지도 정부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일제 잔재인 '위안부'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1961년 윤락방지법이 시행된 뒤에도 성매매를 사실상 묵인하는 특정지역 104곳을 운영했다. 이렇게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이 수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미군의 폭력 앞에 처참하게 노출됐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인 우순덕 햇살사회복지회 원장은 "미군을 상대한 기지촌 여성들은 국가간 이해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철저한 관리의 대상이었던 만큼 역사적 희생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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