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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석의 메디토리/12월 16일] 인류의 역사를 바꾼 약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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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석의 메디토리/12월 16일] 인류의 역사를 바꾼 약물들

입력
2013.12.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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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약물들이 발견되어 인간의 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지만, 인류의 문화와 역사에까지 영향을 끼친 특별한 약물들이 있다. 항생제인 '페니실린'과 이제는 보통명사가 되다시피 한 발기유발제 '비아그라'이다.

미생물의 존재는 17세기 중반 로버트 훅에 의해 밝혀졌지만, 세균을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세균성 감염질환은 속수무책으로 저절로 낫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페니실린은 푸른곰팡이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항생제로,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하였고 42년 대량생산이 이루어져 2차 세계대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14세기의 페스트 이후 매독은 신의 저주라고 불릴 정도로 무서운 질병이었다.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어 결국 뇌와 심장에까지 균이 침범하여 수백만 명이 사망하였다. 주로 사용된 치료법은 수은 훈증법으로 효과도 없었지만 피부궤양이나 신경손상 등 부작용이 매우 심각하였다. 1907년 에를리히가 비소화합물인 살바르산 606호를 만들어 화학요법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40년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매독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페니실린은 매독균이나 임질균과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뇌수막염균, 디프테리아균에 효과가 컸다.

하지만 1년이 지나지 않아 페니실린에 파괴되지 않는 내성균이 출현하기 시작하여 1950년에는 포도상구균의 50% 정도가 페니실린 내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60년대 메치실린과 반코마이신이 개발되었는데, 1996년 일본에서 반코마이신 내성을 가진 포도상구균이 발견되었다. 이 슈퍼박테리아는 항생제 혼합요법으로 치료하고 있지만 완치가 어렵고, 최근 급증하여 전체 장구균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페니실린 이후 많은 항생제가 개발되어 사용되어 왔지만 세균 역시 빠르게 내성을 획득하고 있다. 항생제 오남용의 결과인지 세균의 생존능력의 진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은 페니실린 이전 항생제 없는 시대로의 퇴보에 대한 경고일지 모른다.

1990년 후반까지 남성의 발기부전에 대한 치료법은 보철물과 진공발기기가 사용되었을 뿐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최초의 발기유발제인 '구연산 실데나필'은 당초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을 시작하였다. 임상시험 중 실데나필을 복용한 남성에서 음경이 발기되는 현상을 발견하고는 음경의 혈류를 증가시키는 연구로 변경하여, 1998년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 출시하게 되었다. 신이 준 20세기의 마지막 선물, 비아그라의 등장은 발기부전 치료뿐만 아니라 성문화 자체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고 삶의 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그 동안 성에 대한 관심이나 논의는 은밀하게 이루어져 왔다. 비아그라는 전 세계 모든 남성들에게 성에 대한 희망을 안겨줌과 동시에 성에 대한 문제를 사회공론화하고 건강한 성생활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 냈다. 노화현상의 하나로 포기하였던 발기부전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 노년기에도 당당하게 성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이후 타다라필, 바데나필, 유데나필, 미로데나필, 아바나필 등이 추가로 개발되었고, 현재 비아그라는 특허기간이 만료되어 여러 복제약들이 출시되고 있다. 최근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뿐만 아니라 전립선비대증으로 인한 배뇨장애, 뇌졸중, 폐동맥고혈압, 파킨슨질환 등 다른 질환에 대한 효과가 연구되고 있고, 고도 2,500m 이상을 등반하는 경우 고산증을 예방하기 위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비아그라는 발기부전의 해결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성문화 전반에 혁신을 가져왔지만, 성을 단지 육체적인 결합만으로 한정시키기도 했다. 비아그라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발기만이 남성 성기능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오해를 낳게 되었다. 발기유발제는 발기부전의 치료제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발기를 하도록 도와주는 약이다. 또한 성적 흥분을 일으키거나 쾌감을 높여주는 최음제나 정력제가 아니다. 만족한 성생활을 위해서는 약물보다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우선되어야 한다.

심봉석 이화의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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