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음악에 조예가 없던 어린 시절, 나에게 들국화는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야성의 보컬을 가진 밴드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학생 여럿이 그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이내 격정으로 치달았다. 세상이 떠나갈 듯 '행진, 행진하는 거야'라고 외쳐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들국화의 강렬한 에너지는 청춘을 노래할 줄 알았던 문학성에 있었다. 희망과 불안이 겹쳐있는 그 젊은 시절을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로 전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하는 그대에게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들국화는 선언했다. 나아가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한다. 내가 세상을 사는 방식과 너의 방식이 다른 거라고 이토록 조용히 멋지게 반전시킨다. 또 나의 미래는 항상 밝지도 않고 때로 힘이 들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거야'(행진)라고 외쳤다. 고난을 두 팔 벌려 맞이하겠다는 이 무모함에 수많은 청춘들이 가슴 저 밑에서부터 끓어올랐다.
1986년 '들국화 2집' 이후 환갑을 앞두고 머리가 센 그들이 최근 다시 새 음반 '들국화'를 냈다. 재결성까지 27년 동안 멤버들이 걸어온 길은 그들이 누렸던 명성과 거리가 멀었다. 90년대 초반 한국일보에 입사한 나는 당시 한국일보사 건물 맞은편 동십자각 사거리 코너의 지하에 있는 전인권 클럽에서 종종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의 목은 대체로 잠겨있었고 고음에선 빈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목은 괜찮은 거냐"고 물으면 종업원들은 "발성을 바꾸느라 그렇다"고만 했다. 끊임없이 약물 스캔들에 시달리던 전인권의 반복된 구속은 "이번에 나가면 꼭 다시 들국화 하자"고 부추기던 계기였고, 재결성에 찬물을 끼얹은 원인이었다.
그나마 전인권은 이름값이 있었지만 드러머 주찬권의 삶은 훨씬 곤궁했다. 술집에서 드럼을 치며 행여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쩔 줄을 몰랐다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띄엄띄엄 음반을 냈지만 돈에 쫓겼다. 그래도 음악을 그만두진 않았다.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로 하는 들국화는 싫다"면서도 주찬권은 이번 재결성을 주도했다. 음반 막바지 작업 중 그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또 다시 들국화를 전설로 남겼다.
27년만의 재결성은 '들국화로 必來'에서 노래하듯 기적과도 같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새 노래의 감동은 더 놀랍다. 그들은 주변에서 생을 관조하지 않고 아직도 생의 한복판에 서서 뜨겁게 노래한다. '네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네가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노래여 잠에서 깨라'(노래여 잠에서 깨라)고 노래와 인생이 구분되지 않는 경지를 들려준다. 자기에게 거는 주문 같은 간절함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친다. 숙명처럼 '그대가 떠난 새벽길을 걷고 걷고 또 걷는다'(걷고 걷고). 그러다가 '걱정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신 오지 않으리(하나둘씩 떨어져)'라 눈물겹게 노래한다. 아직도 들국화는 방황하고, 불안하고, 간절하고, 새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누가 들국화를 늙었다 할 것인가.
올 4월 19집을 낸 조용필은 젊은 감성을 수혈받아 예측하지 못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노래에서 정작 중요한 자기 이야기가 빠졌다. 반면 들국화는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고 용기 있게 늙어가는 것이 우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던 패기와 성공이 한 때 있었더라도 늘 뭔가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며 늙어가는 우리에게 그 모든 시간들을 사랑하라고 들국화는 노래한다. 그러니 들국화는 여전히 청춘이다. 그 문학적인 노래의 힘으로 우리의 가슴을 다시 울리고 있다.
김희원 사회부 부장대우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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