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세대 의상디자이너 노라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1966년에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성복이 나왔다는 것. 생판 몰랐던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양장점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던 어른들의 회고담을 때때로 들었으니까. 하지만 '최초'의 시기를 확인하고 나니 궁금증이 일었다. 맞춤 외출복이야 하나쯤 갖춰두고 있더라도 집에서는 다들 뭐 입고 살았지?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기억을 한참 더듬다가 입을 열었다. "겨울에는 떠서 입었어. 스웨터도 떠 입고 내복도 떠 입고. 작아지면 실을 풀어서 소매를 늘이고 밑단을 늘이고…" 얘기를 듣고 보니 내게도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뜨개질을 하던 동네 아줌마들. 집에서 굴러다니던 털실 뭉치들. 그리고 방구석에 놓여있던 재봉틀. 새삼 놀랍다. 한 세대만 거슬러 올라도 많은 여자들이 손수 옷 만드는 기술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었다니. 물끄러미 내 손을 들여다본다. 나는 직접 옷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그런 게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실과 바늘로는 떨어진 단추나 달아본 게 고작이다. 조금 창피하다. 옛 여인들보다 책이야 내가 더 읽었겠지만, 머리로 이것저것 얻는 사이 손은 이것저것 잃기만 한 것 같다. 옛 여인들보다 옷이야 내가 더 많겠지만, 손쉽게 사고 자주 버리는 사이 진정으로 옷과 친해질 기회를 나는 얻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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