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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대졸자와 같은 일 하는데 대화·회식 자리에 잘 안 끼워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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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대졸자와 같은 일 하는데 대화·회식 자리에 잘 안 끼워줘요"

입력
2013.12.1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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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지만 고졸자 대우가 좋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더 좋은 조건의 기업에도 합격했지만, 비전을 보고 이 곳을 선택했죠"

학생들이 분주히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이른 아침. 경기 수원시 수원정보과학고 3학년 강다빈(18)양이 가방을 메고 향한 곳은 교정이 아닌 수원시 장안구의 반도체 장비 업체 W사다. 지난 2월 강양은 특성화고 조기 취업 제도를 통해 이 회사에 입사했다.

W사는 직원 260명에 지난해 매출 650억을 올린 강소(强小)기업. 고졸자 처우는 고졸 임금과 승진 체계가 4년 후 대졸자와 같아질 정도로 좋다. 재직자의 47%가 고졸자이고 직원의 12%는 회사를 다니며 학사 이상 학위를 땄다.

회사는 구직자들의 중소기업 회피, 대졸자들의 조기 퇴직으로 인력난에 시달리다 2011년 특성화고와 산학협력을 맺고 구직난을 해결했다. 인사팀 관계자는 "고졸 인재는 일을 배우려는 의지도 강하고 습득도 빠르다"며 "현재 연구원 신분을 부여해 핵심인재로 키우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고졸 취업 활성화는 일자리 미스매치, 즉 대졸자 등 고학력자들이 대기업 등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면서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여야 하는 불일치 문제의 해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졸 실업자는 2008년 27만5,000명에서 2012년 32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중소기업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중소기업 인력 부족 규모는 25만 명에 달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김선태 교육위원은 "경제 성장 정체에 따라 고학력자가 필요한 일자리는 감소할 수밖에 없는데 사회는 여전히 고학력에 매달리고 있다"며 "일자리 미스매치 해결을 위해 고졸 취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졸 채용 벌써 꺾였나?

"솔직히 자발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정부 정책과 사회 분위기에 따라가고 있다.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유지할 생각은 있지만, 지금처럼 대규모 채용은 어렵다"(대기업 인사팀 A씨)

우리 신한 국민은행 등 8개 대형은행의 고졸 채용은 2011년 345명에서 2012년 715명으로 급증했지만 올해 491명으로 전년 대비 31% 줄었다. 대졸 채용이 지난해 940명에서 800명으로 13.5% 줄어든 것과 비교해도 감소폭이 크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년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295개 공공기관 고졸 인력 채용 규모는 모두 1,933명. 역시 올해보다 579명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졸 채용 확대가 반짝 현상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정부의 지원예산도 줄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산업분야별 특성화고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편성한 '특성화고 체제개편 지원예산' 39억 2,560만원은 올해 5억2,0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산업 분야별 특성화고는 특정 산업에 소질 있는 학생을 발굴 육성하는 학교다. 예산은 기자재 구매, 교원 연수, 교재 개발에 쓰여왔다. 특성화고들은 당장 최신 기자제 도입 등에 어려움을 겪게 생겼다.

서울 한 특성화고 채용 담당교사는 "지난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기업을 방문해 고졸 채용을 독려하는 등 의욕이 컸다. 양질의 일자리가 나와야 고졸 취업문화가 안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태 연구원은 "고졸채용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솔선해야 한다. 결국 정부의 의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업 내부의 차별도 여전

이지혜(가명 21)씨는 지난해 2월 대형 제약회사에 취업했다.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는 기쁨은 잠시, 그가 마주한 현실은 고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었다. 이 씨는 "하는 일은 대졸자와 같은데 임금이나 승진 체계가 다르고 대졸 선배들이 일상적 대화나 회식 자리에도 껴주지 않았다. 고졸 출신이라 차별을 당하는 것 같아 퇴사 후 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전봉걸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학력과 전문성에 따른 임금 격차 분석' 에 따르면 1993년 13.9%였던 고졸 전문가와 대졸 이상 비전문가 사이의 임금 차이는 97년 10.8%까지 줄었다가 2010년엔 28.9%까지 벌어졌다.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차이는 불가피하지만, 기술을 가진 고졸자의 임금이 비기술직 대졸보다 적은 것은 '학력 프리미엄'이라는 것이다. 기술자를 우대하는 독일에서는 전문기술인자격증(마이스터 자격증)을 취득한 고졸 기술자의 임금이 대졸자보다 높은 편이다.

고졸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취업 후 조기 퇴사로 이어진다. 지난 10월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졸업자 취업유지 현황 분석 결과 지난 2월 마이스터고 졸업생 3,372명 중 취업자는 3,191명(94.6%)이었으며 이 가운데 8월 현재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취업 유지자는 2,614명(81.9%)으로 나타났다. 특성화고는 졸업생 6.041명 중 3,154명(52.2%)이 취업했으며, 이 중 취업 유지자는 2,013명(33.3%)이었다.

경기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취업담당 부장교사는 "기업 내부에서 고졸자에 대한 임금 승진 차별이 존재하고 폭언과 욕설 심지어 성희롱을 겪는 경우도 있다"며 "고졸자의 인성이나 인내심을 문제 삼기도 하는데 먼저 기업 문화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취업의 질 개선해야

"회사 임원이 유럽의 세계 1위 해운회사인 머스크그룹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회사는 고졸 직원을 교육해 전문가로 육성함으로써 높은 이직률 문제를 극복했다는 말을 듣고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어차피 대학 졸업한 친구들도 가르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유망한 인재를 조기에 뽑아 애사심을 갖춘 인재를 키우려 한다."(대우조선해양 인재육성팀 이재율 과장)

대우조선해양은 중공업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교육과학기술부의 '선취업 후진학 제도'의 인가를 받아 전문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중공업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대상은 고졸 신입사원. 입사 1년 동안 2,500만원의 연봉을 받으며 교육에만 전념하고, 이후 학업과 교육을 병행한다. 입사 7년 후에는 대졸 사원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 고졸 공채 경쟁률은 32대 1에 달했다.

고졸 신입사원들의 열정은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인사팀 관계자는 "고졸 신입사원들은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열정이 대단하다"며 "이들이 교육을 마치고 현장부서에 배치돼 활약하면 조직도 활성화하고 대졸 사원들도 자극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고졸 채용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한국노동연구원 김향아 연구원은 "고졸 채용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정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입사자 처우 개선과 대졸자와의 차별 철폐 등 취업의 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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