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죄목을 밝힌 판결문에는 과거의 정치행사 두 가지가 언급돼 있다. 조선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가 그것이다. 장성택은 두 행사의 의미와 존엄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처신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 북한이 장성택의 국가전복음모 혐의를 비난하면서 유독 이들 행사를 거론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행사는 김씨 일가의 3대 세습과 직결돼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0년 9월 28일 열린 당 3차 대표자회를 통해 권력의 전면에 공식적으로 나섰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를 계기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대북 소식통은 "두 행사는 북한 최고권력자의 등장을 알린 신호탄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의미가 각별하다"고 말했다.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김 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을 신설해 아들 김정은을 앉혔다. 그가 맡은 최초의 주요 직책이다. 당 중앙군사위가 북한이 내세운 선군정치의 핵심기관이었던 만큼 김 위원장 유고 시 김정은이 군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김정은은 대표자회 전날 대장 칭호도 받았다.
이 회의에서 김경희는 당 정치국 정위원으로 발탁됐지만 남편 장성택은 정치국 후보위원에 그쳤다. 실질적인 2인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장성택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판결문에 "김정은 동지를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신 결정이 선포됐을 때 장성택은 마지못해 자리에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다"고 적시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를 통해 북한은 주석제를 폐지하고 정무원을 위상이 강화된 내각으로 교체했다. 특히 생산수단의 개인소유 확대, 독립채산제 명문화, 수익성 적용 등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부문의 성과를 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장성택은 이 회의에서 결정된 정부기구의 역할 분담을 무시하고 일체의 기구 사업을 좌지우지 해 정부기능, 특히 경제사령부 기능을 마비시켜 경제를 파탄시킨 것으로 돼 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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