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 문화예술은 속성상 자체적인 활동이나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이문을 남기는 일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애초부터 공공재적인 성격이나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건강한 재원을 조성하거나 지원을 받은 일은 생존이 걸린 필수불가결한 일인 것이다. 옛날 귀족이나 왕실 또는 종교로부터 후원을 받던 방식이 시대를 바꾸며 진화하여 그 대상이 정부에서 기업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경우 최근엔 그 유형이 더욱 다양해지고 전문화되고 있어 후원, 협찬, 기부, 모금, 사회공헌, 마케팅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 동안 문화예술계가 기획한 일에 기업이 지원만 하던 형식에서 탈피하여 기업도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을 경영과 마케팅 및 직원복지에 활용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과 문화계가 효과적으로 윈-윈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문화예술계의 특성과 목적, 경향을 서로 현실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생겼다. 일방적으로 각자의 필요성과 목적만 강조하며 무조건적인 후원과 반대급부를 요구하기보다는 서로 호혜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결실을 나누고 관계를 지속하려는 태도와 노력이 중요해 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문화예술위원회가 아름다운재단에 의뢰하여 나온 기업의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의 연구 결과는 기업의 경향과 의사결정 및 장애요인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 동안 기업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 영역이었던 일반 사회복지나 학술연구 및 장학 사업에 못지않게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이 늘어나고 있고 지역사회와 연계된 활동이 증가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이나 상생경영의 트렌드와도 맞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예술단체나 시설에게는 적합한 프로그램의 기획이 있으면 그 잠재적인 기회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이나 문화복지 성격의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로 직접적인 수혜대상은 사회취약계층이지만 간접적 수혜를 문화예술인이 받는 구조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런 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절대적 요인을 보면 여전히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라는 사실은 다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지만, 이는 기업의 오너나 CEO의 의지가 실질적으로는 중간 관리자나 책임자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기업 조직의 특성을 이해할 때 결국 무조건 윗사람부터 만나려 하는 것 보다 실무단위의 네트워킹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또한 기업이 문화예술계와 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인지도나 개인적 관계보다 문화예술단체나 예술가의 신뢰도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결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의 문화예술계와 함께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도 적지 않은 데 이는 기업측면의 요인과 문화예술계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전반적인 경기의 침체나 기업 수익의 악화 등 문화예술계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영역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후원금 집행의 투명성과 의사소통, 후원자 예우나 사후관리, 사업 집행과 보고 등은 거의 바닥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안타깝다. 문화예술계 특유의 행정 관리 능력 부재와 일부 이기적인 태도가 기업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문화예술계의 책임이기도 하다.
기업은 문화예술을 활용한 사회공헌활동에 있어서 콘텐츠의 창의적 유형과 실질적 성과의 근거를 요구 받고 있으며 기업 내부로부터도 지지 받기를 원한다. 이는 문화예술계와 기업 사회공헌 관계자의 교류와 만남 및 긴밀한 협력의 모색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직접 만나는 경로가 제한적인 만큼 공공기관이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여 상호간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고 구체적인 협업의 방안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선철 용인대 교수·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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