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더 민주화할 방법이 없을까. 복지국가 이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국가의 역기능을 제어할 방법은 무엇일까. 과거 서구 자본주의의 시행 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몰락하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전환을 모색하던 정치적 격변기에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진 코헨과 뉴스쿨대 석좌교수 앤드루 아라토가 던진 질문이다. 이들은 당시 상황을 "이 세기의 가장 중요한 유토피아적 해방 프로젝트인 마르크스주의가 사망했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즉 마르크스주의에만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은 아니었다. 서구의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도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두 저자는 사회과학에서 통일된 정의를 내리기 불가능한 '시민사회'라는 키워드를 기초로 해답 찾기에 나섰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저자들은 마르크스의 시민사회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18세기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생긴 부르주아 시민사회는 상부구조인 국가를 결정하는 토대로, 사적 소유에 기초한 계급사회를 반영한다. 또 인류의 모든 잠재력이 실현되기 위해서 시민사회와 그 부산물인 국가는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예언과 달리 서구에서 사회주의혁명은 발생하지 않았고, 시민사회와 국가는 여전히 존속했다. 잘못된 예언을 교정한 이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다. 그는 서구 자본주의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국가가 노동자 계급을 억압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그 체제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간파했다. 에서 그람시는"시민사회는 국가와 경제 양자의 구조를 응축하는 공간이며, 시민들이 양자의 구조적 압력으로부터 자율성과 자기규제, 비판적 잠재력을 키우는 공간"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아래에서 시민사회는 영속될 수 있고, 시민사회의 보전은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고까지 나아갔다.
저자들은'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개념화한 그람시의 입장을 수용,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확대할 수 있는 주요 장소"라고 본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이런 역할을 해내려면 그 개념 속에 역사적으로 뿌리박힌, 시민사회 대 국가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오랜 이분법은 부르주아와 시민, 경제와 시민사회를 동일시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저자들은 마르크스가 말한 상부-하부구조의 양분 모델을 넘어 '국가-경제-시민사회'라는 삼각 모델을 제시한다. 즉 경제와 국가, 시민사회가 상호작용하면서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의사 소통으로 움직이는 시민사회가 민주화를 이끄는 중심 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권력을 가진 국가뿐만 아니라 돈을 가진 경제와도 적절히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와 경제, 시민사회 간의 경계를 보존해야만 시민사회의 민주화, 이를 기초로 한 국가와 경제의 민주적 통제,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00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은 둘째치고 철학적으로 너무 복잡해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이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독할 만하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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