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첫 선을 보인 '호빗' 시리즈는 후광을 지녔다. 2000년대 가장 성공한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연속선상에 있다. 소설 의 작가 J.R.R. 톨킨이 쓴 동명 소설들을 밑그림 삼았다. '반지의 제왕'에 이어 피터 잭슨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 이야기도 이어진다. '반지의 제왕'의 히어로 프로도(일라이저 우드)의 삼촌 빌보(마틴 프리먼)가 절대반지와 함께 겪는 모험담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익숙한 이야기 틀 속에서 낯익은 인물들이 활동하는 모습은 흥행에 약이자 독이 될 수 있다. 지난해 '호빗: 뜻밖의 여정'이 개봉했을 때 국내 관객들의 반응은 이중적이었다. 281만명이 찾으며 썩 괜찮은 흥행 성적을 올렸지만 영화에 대한 평은 박했다. 호빗족인 주인공 빌보가 빼앗긴 왕국을 되찾으려는 난쟁이 왕족 일행의 모험에 의도치 않게 끼어드는 과정 등을 보며 관객들은 짙은 기시감을 느꼈다.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를 너무 빼닮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관객들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볼거리에만 그럭저럭 만족했다. 1초에 24프레임인 여느 영화와 달리 초당 48프레임으로 구성된 HFR(고속영사기법) 상영 방법도 시각적 즐거움을 줬다는 평가가 따랐다.
'호빗: 뜻밖의 여정'이 이야기보다 볼거리에서 호평을 받았다면 후편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12일 개봉)는 좀 더 균형을 갖췄다. 긴박한 이야기가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에 얹혀 스크린에 펼쳐지며 몰입을 유도한다. 161분이란 짧지 않은 상영 시간이 꽤 빨리 흘러간다. 이야기가 허약하다는 악평은 전편보다 덜 받을 듯하다. 볼거리는 전편보다 더 강해졌다.
이야기는 길에서 시작한다. 난쟁이족 왕자 소린(리처드 아미티지)과 그의 부하들이 거대한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왕국 에레보르로 향하는 여정이 상영 시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미로 같은 마법의 숲에서 거대한 거미들을 만나 겪는 위기, 난쟁이족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엘프족에게 소린 일행이 잡혀갔다가 도망치는 장면 등이 서스펜스를 만들어간다. 특히 소린 일행이 술통을 타고 폭 좁은 하천을 통해 도망치면서 벌어지는 전투는 유머러스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유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폐허가 된 에레보르 왕국의 옛터에서 마주친 용 스마우그의 거대한 실체도 이 영화가 내세우는 흥행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절대반지라는 렌즈를 통해 인간의 권력욕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악, 그리고 파멸을 종종 비춘다. '반지의 제왕'이 품고 있던 주제의 반복이긴 한데 여전히 관객들에게는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듯하다.
이 영화는 당분간 서울에선 보기 쉽지 않다. 대형 멀티플렉스 CGV와 롯데시네마가 극장 수입 배분을 놓고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코리아와 갈등을 빚고 있어서다. 극장과 배급사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서울 밖 관객들만 이 판타지를 쉽게 즐길 수 있다. 내년 이맘때 개봉할 다음 편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영화라 똑 부러지는 결말은 없다. 허망한 마무리에 실망하진 말 것. 12세 이상 관람 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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