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12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보고한 자체 개혁안에 대해 대체로 박한 평가를 내렸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초래한 근원적 문제에 대한 개혁 방안은 쏙 빼놓은 채 외부 불신을 의식한 내부 규정 마련에만 치우친 '개혁 시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국정원의 권한 오ㆍ남용을 제어할 마땅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준법통제처'를 통해 권한 오ㆍ남용 등을 통제하겠다는 것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는 비판이 많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국정원의 수사와 정보 수집 독점 문제 때문에 대공수사권을 검찰과 경찰에 넘기고 국내파트와 해외파트를 분리하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대단히 실망스럽다"면서 "국정원 예산 통제에 대해서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치개입 논란을 불러온 대북심리전 활동을 제도화함으로써 오히려 '개악'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북심리전은 국정원법이 정한 직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방어심리전 시행규정 제정을 통해 앞으로 심리전 활동을 강화하겠고 밝힌 것은 개혁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국정원은 방어심리전 대상을 북한 지령, 북한체제 선전선동 등에 국한하는 대신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관한 언급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방지할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역시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정원 전 직원에게 정치개입 금지 서약을 제도화한 것에 대한 현실성과 실효성 문제도 지적됐다. 이호중 교수는 "퇴직 후 3년 내 정당 가입 및 활동 금지 조항을 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정치개입 금지 서약을 제도화한 대목도 현행법 상 공무원의 정치개입 금지는 당연한 의무인 만큼 일종의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국정원의 '셀프 개혁안'은 말 그대로 자체 규율 장치에 머물렀다는 지적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의 핵심 개혁 대상으로 거론돼 온 부분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어 진정성 있는 개혁안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향후 국회 특위 논의 과정에서 국정원의 권한 집중 분산과 외부 통제 강화 등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어야만 국정원 개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번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은 2006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옛 새누리당)이 만든 개혁안보다도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에도 불법 도청 등 국내 정치 개입 문제로 개혁 논의가 촉발된 터라 한나라당은 5개 유형이었던 국정원 직원의 직무 범위를 17개로 세분화함으로써 정치 개입 여지를 줄이고자 했다. 대공수사권에 대해선 그대로 유지토록 했지만 대신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강화해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 한나라당 개혁안에도 국회의 통제권 강화와 관련한 각종 방안이 들어가 있었는데 국정원 셀프 개혁안에는 이마저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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