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고 있는 원전확대 논란의 중심엔 미래 전력수요예측을 둘러싼 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원전을 반대하는 쪽에선 "정부가 원전확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래 전력수요를 부풀려 책정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에선 "전력수요를 억지로 빠듯하게 잡았다가 전기부족사태라도 오면 그건 재앙"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안을 통해 앞으로 2035년까지 우리나라 전기수요가 연 평균 2.5%씩 증가할 것으로 상정했다. 이 경우 2011년 3,910만톤(TOEㆍ석유환산톤)이었던 전력수요는 2035년 7,020만톤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같은 전기수요를 맞추려면 정부는 현재 23기인 원전을 39~41기까지 늘려야 한다고 봤다. 화력 신재생에너지 등 다른 발전소도 있지만, 이 정도 수요를 맞추려면 원전 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전제대로라면 현재 건설 중이거나 건설계획이 확정된 11기 말고도 5~7기가 추가 증설돼야 한다.
하지만 반핵단체 등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전력수요예측 자체를 잘못했다고 지적한다. 전력수요를 너무 높게 책정하는 바람에, 안 지어도 될 원전을 더 지으려 한다는 얘기다.
11일 열린 기본계획 관련 2차 공청회에서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전후로 급변한 대내외 여건을 반영하지 않은 채 과거의 예측모델로 한국의 장기 에너지수요 전망을 한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했다. 최근 5년간의 전력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건 대표적 전기다소비 업종인 철강업계가 설비를 대거 늘리고 정부가 전기요금인상을 억제한 비정상적인 결과인데, 정부가 이런 비정상을 근거로 향후 20년 동안의 수요를 산출했다는 것이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전력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그 때부터는 감소 추세로 전환된다는 사례도 제시되고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스웨덴이나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은 2000년을 전후로 1인당 전기소비가 줄어들거나 정체되고 있는 상태"라며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무조건 전기사용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번 전력수요예측에 '거품'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번 전력수요 전망은 일부러 부풀린 것이 아니라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환경부, 온실가스 감축정보센터 등 유관기관들의 연구를 종합해서 산출한 객관적 지표"라며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유가 전망, 에너지다소비업 비중 등 주요 변수를 다 반영했다"이라고 말했다.
평가방법이나 관점에 따라 수요전망은 다를 수 있지만, 국민 필수재인 전기의 속성상 의도적으로 빡빡하게 책정할 수는 없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한 당국자는 "정부도 과다설비로 인해 국가적 손실을 낳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수요전망을 낮게 잡고 이를 근거로 발전소를 덜 지었다가 만에 하나 수요가 증가해 전기가 모자라는 사태가 온다면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현재로선 정부는 수요전망을 수정할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수요전망이 바뀌지 않는 한 전체 전력에서 원전비중을 29%까지 높이고, 원전을 추가 증설한다는 방침에도 변화는 없다. 그런 만큼 논란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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