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연합(EU)과 관계 강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무력 진압하려 했다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시위를 이끌고 있는 야권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요청한 원탁회의 참가를 거부했고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부를 상대로 제재를 포함한 모든 대응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우크라이나 경찰이 수도 키예프의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면서 9명이 체포되고 다수가 부상했던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국무부는 제재 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자산 동결, 고위 관료 입국 금지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번 시위 진압 사태를 친러시아 노선을 고수하는 야누코비치 정부를 압박할 호기로 삼고 있다. 전날에도 존 케리 국무장관이 "평화적 시위에 폭력으로 대응한 우크라이나 당국의 조치에 혐오감을 표한다"며 원색 비난했고,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파블로 레베드예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에게 전화해 시위 진압에 군대를 동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중재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인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유럽차관보도 시위대와 야누코비치를 잇따라 면담한 뒤 "간밤에 발생한 사건은 유럽국가의 일원이나 민주국가에서는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우크라이나 정부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미콜라 아자로프 우크라이나 총리는 경찰 투입은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면서 "경찰이 평화적 시위를 진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도 강경해졌다. 야권은 전직 대통령의 제안을 따른 야누코비치의 범국민 원탁회의 참가 요청에 "체포된 시위대를 전원 석방하고 총리를 비롯한 내각을 해임할 때까지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대 야당인 조국당의 부당수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는 "우리가 마주한 것은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곤봉을 동원한 해산 작전"이라며 "정부가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 시위진압부대 베르쿠트가 10일 새벽부터 10시간 동안 시위대의 저항 속에 해산 작전을 펴다가 철수했던 키예프 독립광장에는 시위대가 더욱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참전했던 퇴역 군인들이 진압경찰과 맞서 전위대 역할을 맡겠다고 나서는 등 시위대의 사기가 오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위의 진원이 됐던 EU와의 협력협정 협상 재개 의지를 비치며 여론 무마에 나섰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1일 야누코비치와 면담한 뒤 "우크라이나 정부가 내일(12일)까지 협상 재개와 관련한 조치를 취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아자로프 총리는 이날 EU에 협상 재개 조건으로 200억유로(29조원)의 지원금을 요구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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