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의무는 신성하다. 옳다. 60여년 간 이어진 분단 상황, 북한과의 적대 관계를 고려하면 우리 군대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해악을 끼치는 불합리하고 획일적이며 전체주의적인 군대 문화마저 우리는 신성시해야 할까. 한국일보가 20여일 동안 해외 선진국들을 찾아가 그들의 병역 제도와 문화를 살펴본 결과 열린 조직, 자유로운 의사소통, 개인의 인권과 개성 존중 등은 꿈이나 금기가 아닌 현실이었다. 한국 군대의 문제를 더 이상 성역으로 치부해 침묵 속에 방치할 필요는 없다. 군의 전력을 제고하고, 복무자들에게 성장 기회까지 제공하는 선진국 군대로부터 우리 군이 배워야 할 점은 많았다. 우리 군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1. 복무기간 줄이자
현역병 복무 기간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정주성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은 "현재 21개월인 육군병 복무 기간의 경우 20개월까지는 계획대로 단축하고 '차등 복무제'와 연계해 추가 단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즉 복무가 상대적으로 고된 전방 부대는 복무 기간을 18개월까지 더 줄이되 전원 모집으로 충원하고 나머지 후방 부대와 카투사는 20개월까지만 단축하는 방식이다. 정 책임연구위원은 "차등 복무제를 적용하면 병 복무 기간으로 단축되는 병력 수급과 전투력 약화 문제를 최소화하고 병역 형평성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군 복무에 대한 보상 강화 방안들도 거론된다. 이상목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경제학과 교수는 '군역형평조세' 도입 방안을 내놨다. 병역을 부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제 활동을 하는 일정 기간 동안 세금을 매기자는 것이다. 아니면 병역 의무 이행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보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밖에 다른 징병제 국가들보다 낮은 병사의 봉급 수준을 현실에 맞게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온다.
2. 간부 인식부터 바뀌어야
경직된 병영 문화가 바뀌려면 군 간부의 인식을 전면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한국군 간부들은 징병제 하에서 병력을 손쉽게 받아 쓰다 보니 병사 개개인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군에 와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흔히 "3소대 애들 좀 제가 쓸게요"라고 말하는 데에서 병사를 도구로 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그는 "지난달 별세한 채명신 초대 주(駐)월남 한국군 사령관이 병사를 부하로 부르지 않고 전우라 부른 것처럼 군 지휘관, 간부들이 병사를 국민 한 사람으로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대 KIDA 현역연구위원은 "간부의 의식 전환을 바탕으로, 간부와 병사 간 파트너십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초급 간부에게 소통과 합리성에 기초한 진정한 리더십이 뭔지 인식시키는 교육 과정을 보완하고 병사들에겐 자존감을 불어넣는 병 리더십 교육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대의 경직된 상하관계는 간부와 병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선임병과 후임병 사이에서 교육되고 전수되기 때문에 이 같은 교육과 관계설정은 선임병-후임병 관계로 확대돼야 한다.
3. 군 복무경력 인증서 주자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21개월을 군에서 보내야 하는 한국 20대 남성들에게 군 복무 기간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군 복무 가산점도 없고 군 경력 전체가 '병역필'이란 한 단어로 표현되는 현실은 의무병들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기 어렵다. 군대에서의 교육과 경험을 사회에서 인정받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김원대 KIDA 국방운영연구센터 현역연구위원은 "군 복무 중 쌓은 경력 사항들이 전역한 뒤에도 활용되기 쉬운 형태로 일목요연하게 제시될 수 있는 기록 관리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군 복무 경력 시스템을 만든 뒤 누적된 성과에 따라 군 복무 중엔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전역 때에는 '군 복무 경력 인증서'를 발급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군 내에서 경력 관리가 체계화해야 한다. 병역 의무자가 보유한 경험과 학력이 군의 주특기와 일치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도 있다. 김두성 전 병무청장은 "징병 검사를 할 때 아예 군에서 모병관들이 나오는 스위스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소수가 선발되는 '탐지분석' 같은 특수 주특기가 아니라 정비, 취사 등도 경력을 인정해주는 방안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 '국방옴부즈만'제도 들여오자
전문가들 사이에는 군 내 인권 개선을 위해 노무현정부 시절부터 병영 문화 개선 방안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던 '국방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다. 윤민재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사회학 박사)는 "독일, 캐나다 등이 시행 중인 국방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해 군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회나 국민들이 동의한 공신력 있는 기관이 나서 독립적 권한을 갖고 인권 문제까지 광범하게 살핀 뒤 낵궁??권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의회에 설치된 국방 옴부즈만은 군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군의 '내부 지휘원칙'이 준수되도록 감독해 군을 민주사회에 통합시키는 게 주요 임무다.
5. 여성 선택적 복무제 도입하자
군 내 여성 비율 확대를 위해 원하는 여성은 병사로 복무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효선 청주대 군사학과 교수는 "최근 직업으로서 군 복무를 원하는 여성이 늘고 있고, 군이 첨단 과학화하는 추세에서 여성에게 적합한 보직도 늘고 있는 만큼 이를 '여성 선택적 복무제'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주성 KIDA 책임연구위원은 "병 복무 기간 단축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긴 숙련 기간이 필요한 주특기 보직에서 일할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유급지원병제'가 병역 자원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까지 제대로 정착될 경우, 2020년 이후 여성에게도 유급지원병에 지원 기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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