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번 칼럼에서 '우리의 현 고용시스템의 수명이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개방화되어 있고 서비스화되고 있는 경제환경, 저출산ㆍ고령화, 인력의 고학력화, 높은 청년 실업률, 저활용되고 있는 여성인력, 대ㆍ중소기업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불공정한 노동시장 환경에서 우리가 설계하고 도입하려는 지속가능한 고용시스템은 어떤 모습일까?
먼저 기업규모,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 혹은 하청사슬의 위치에 따라 임금과 복지수준이 크게 달라지는 불공정성이 크게 축소되고, 기업 내에 직무, 숙련, 전문성, 난이도, 책임성 등의 직제와 직무에 따라 임금과 대우의 차별이 아닌 합리적 차등이 유지되는 고용시스템이다. 또한 현재와 비교하여 경험, 숙련 등에 의한 생산성, 책임성,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연공제가 대폭 개혁된 고용시스템이다. 현재보다 기업 간, 고용형태 간, 가치(원하청)사슬 간의 격차나 차별이 크게 축소되고 기업 내 직무, 직종 간의 합리적 차등이 확대되고 불합리한 연공성이 축소된 고용시스템이다. 이런 고용시스템으로 개혁되려면 일관된 직무, 직제, 직무능력의 기준을 세워 기업 횡단적인 비교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산업ㆍ업종별로 기업 간의 직무내용, 근로시간, 숙련, 직무능력, 임금수준 등에 대한 기업 간 비교 가능한 잣대로서의 기준이나 표준을 점진적으로 구축하고, 이런 기준으로 기업 간 비교, 조율, 노동이동성 제고, 불공정성 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노동시장 불공정성의 기반이 되어 온 재벌시스템이나 원ㆍ하청관계의 갑을관계에서 오는 공급과 수요의 독점을 근본적으로 시정하거나 강력하게 규제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제산업구조의 개혁없이는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없다.
다음으로 생애주기와 고용주기를 일치시키면서 세대 간의 일자리가 적절하게 분배되는 고용시스템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28~55세까지의 왕성한 시기에 초과근로를 통해 노동시간과 일자리를 독점하는 구조를 깬 고용시스템이다. 생애주기의 필요에 따라서 육아시기, 가정 내 환자, 장애인, 노인 등 돌봄을 필요로 하거나 건강이나 개인의 취미, 학습, 봉사 등을 목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여 일할 수 있는 고용시스템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초과근로시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함께 강력한 규제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 대신 근로자들의 근로시간대, 교대제, 초과근로의 할증료 등에서는 유연성 등을 필요로 할 것이다.
저임금 근로자 보호를 위해 지금보다 최저임금 등을 단계적으로 상당폭 인상하고 취약근로자들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결합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하는 식으로 고용과 복지시스템이 합쳐져야 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공급의 조절, 서비스 요금의 인상과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또한 쇠퇴산업에서 성장산업으로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교육훈련, 일자리 서비스 제공 등도 크게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 제기된 통상임금 등과 연계된 임금체계 개혁, 직제와 직무개편, 정년연장,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근로자 차별과 공정성, 청년과 여성고용, 시간제 등에 이르기까지 개별 고용이슈들에 대한 각론적인 접근보다 총론적인 고용시스템 개편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모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개혁방향에 맞추어 개별 이슈에 대한 각론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우리의 고용문제에 대한 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논쟁으로 인해 현 고용시스템을 지속가능한 고용시스템으로 개혁하려는 사회적 과제가 묻혀져서는 안 된다. 개혁노력은 지금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현 정부의 임기 내에서 노사정을 넘어서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를 모아야 한다. 개혁을 완수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그런데 현 고용시스템의 위기에 대한 인식, 고용시스템 개혁방향 논의 등이 아직 걸음마 수준이어서 안타깝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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