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대법원이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한 150여 년 전 형법 조항을 부활시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인도 대법원은 11일(현지시간) "뉴델리 고등법원에서 동성애를 합법으로 결론지은 것은 부적절했다"며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한 형법 377조는 아직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인도 정부는 1861년에 "자연 질서를 거슬러 성관계를 맺는 자는 징역 10년 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형법 377조를 제정했다. 영국이 16세기에 동성애를 불법으로 금지했는데, 인도가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법 조항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인도 동성애 옹호단체인 나즈 재단(Naz Foundation)은 2001년에 이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뉴델리 고등법원은 2009년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동성애 합법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뉴델리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형법 377조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걸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정치권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보수 정당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도 최대 야당이자 보수 정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최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는 등 내년에 있을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동성애 금지법을 개정하기 위한 최종 권한은 인도 의회에 있는데, 인도국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향후 몇 년간은 동성애가 합법화 될 가능성은 없다고 NYT는 지적했다.
동성애자와 인권운동가 수천 명은 이날 수도 델리에 모여서 대법원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나는 게이다. 나를 처벌하라" "내 사랑은 범죄가 아니다" "내 육체는 나의 권리" 등의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나즈 재단의 활동가인 안잘리 고팔란은 "이번 판결은 지금껏 진전됐던 동성애 합법화 과정을 한꺼번에 후퇴시킨 것"이라면서 "대법원은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공동체뿐만 아니라 인도 헌법을 실망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슬람교와 힌두교, 기독교 등 종교 지도자들은 대법원의 결정을 한 목소리로 환영했다. 힌두교 지도자인 타누자 타커는 "동성애는 자연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며 "부자연스러운 것은 범죄"라고 강조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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