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를 눈 감아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공인회계사가 최초로 법정구속됐다. ‘미필적 고의’로 범행을 저질렀더라도, 부실감사가 막대한 피해의 원인이 된 만큼 강력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기정)는 12일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외부 감사 과정에서 부실을 묵인하고 감사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기재한 혐의(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된 다인회계법인 소속 공인회계사 소모(48)씨와 김모(42)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한 뒤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저축은행이 법이 금지하는 각종 PF사업의 이익금을 금융자문수수료 형태로 허위 계상하는 과정을 회계전문가인 소씨 등이 대략 알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회계처리 과정에 중대한 부정이나 오류의 위험이 상당함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이들은 적합한 추가 감사 절차로 나가지 않고 저축은행 측의 설명만 듣고 감사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기재해 저축은행의 대규모 부실의 여건을 조성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들은 저축은행의 부실을 눈감아 달라는 부정한 청탁과 함께 고급 룸살롱 등에서 2차 접대를 다수 받고, 자신들의 임무해태가 발각될 수 있는 근거자료까지 파기했다”며 “부산저축은행의 분식회계로 다수의 서민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금전적 손실은 물론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힌 점까지 고려하면 소씨 등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로 회계사의 부정행위에 대한 법원의 형사 처벌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법원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치가 아직 잡히진 않았지만, 소씨 등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것처럼 회계사의 범법 행위에 대해 벌금형이 아닌 실형을 선고하는 빈도가 최근 2~3년 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첫 법정구속 사례가 나온 이상 회계사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양형은 지금 수준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회계사의 부정행위로 인한 민사적 책임도 과거보다 중하게 묻고 있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삼화저축은행의 후순위채를 샀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은행과 대주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회계법인에 20%의 배상책임을 물었으며, 같은 달 국내 최대 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에게도 코스닥 상장기업 포휴먼에 대한 부실감사 책임을 물어 14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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