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정규수업(정기국회) 중 여야는 국정원 대선개입, NLL파동, 막말과 말꼬리 공방 등 싸움으로 99일을 보냈다. 수업종료일 벼락치기 식으로 34건의 법안을 처리했지만, 가장 중요한 예산안은 손도 대지 못했다. 결국 한달 간의 보충수업(임시국회)이 11일부터 시작됐다.
애초 이번 정기국회 회기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경제민주화, 경제활성화 법안이었다. 하지만 시간도 부족하고, 여야간 입장차도 워낙 커, 현재로선 보충수업기간에도 이들 법안처리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법안을 위해 여당이 단독처리의 무리수를 선택할 리도 없다.
애초 정부가 조기통과를 요청한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은 총 15개. 이중 주택법(리모델링수직증축) 지방세법(취득세영구인하) 등은 정기국회에서 처리됐지만, 아직도 10여건의 법안은 계류 중이다.
이중에서도 재계가 가장 강하게 원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지주회사 체제 하에서 손자회사가 외국자본과 함께 증손회사를 설립할 경우 50%지분(현행 100%)만 가져도 된다는 것이 골자. 해당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위는 12일부터 법안심의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야당이 '특정 대기업 봐주기'라며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어 사실상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SK와 GS그룹은 2조3,000억원대 합작이 무산되고 석유화학 신규투자가 불가능해진다.
관광진흥법은 대한항공이 지으려는 7성급 관광호텔과 직결된 법안. 모텔 아닌 '랜드마크'성 문화관광시설인데도 학교주변이란 이유로 건설이 불가능해지자 정부는 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이 역시 특혜시비에 휘말려 연내 통과는 난망한 상태다. 이 밖에도 ▲크루즈산업 유치 지원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크루즈산업육성법 ▲창업투자사 코넥스 상장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전문엔젤 도입과 벤처확인제도를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 ▲영리의료법인 도입의 길을 터주는 서비스산업 육성법 등도 통과여부가 불투명하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입법 취지자체를 둘러싼 대립보다는 수위에 대한 의견차가 대부분이라 경제활성화 법안보다는 여건이 나은 편. 하지만 100일간 정기국회에서도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던 만큼 임시 국회에서도 타결가능성은 높지 않다.
공정거래법의 경우 여야 모두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에는 찬성하고 있지만 야당은 기존 순환출자까지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 기업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 시에 순환출자를 예외로 인정해 주는 조항 역시 여야의 온도차가 크다.
당내에서조차 의견조율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이 그런 케이스인데, 지난 5월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최대 10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자는 내용으로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민주당의 '남양유업방지법'보다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경실모 1호 법안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의 '300억원 이상 횡령ㆍ배임 시 최소 15년 이상 징역' 내용도 10년 형을 주장한 야당의 개정안보다 무거운 처벌기준으로 당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의원발의가 아닌 정부발의 법안은 입법 과정에서의 걸림돌이 더욱 크다. 현재 법무부에서 수정안을 검토 중인 상법개정안의 경우 법제처→차관회의→국무회의 등 정부 내 논의기간만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법안을 연내에 국회로 넘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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