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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수사관도 트라우마 시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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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수사관도 트라우마 시달려요"

입력
2013.12.1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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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신고는 끊임없이 밀려들고, 해결해야 할 사건 서류철은 책상 위에 쌓여간다. 성폭력에 잔인하게 짓밟힌 가녀린 피해 소녀 앞에서는 같이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다"는 뻔뻔한 남성 앞에서는 분노를 억누른 채 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진술을 끌어내야 한다.

수도권 한 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의 여성 수사관 A씨는 매일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 그는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피해자 입장에서 공감하는 게 필수적이라 어느 순간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며 "그러다 보면 일상에서 만나는 남성들까지 의심하는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다"고 말했다.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루는 강력계 형사들만 경험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성폭력 전담 수사관들도 겪고 있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성폭력 수사관들에게 본격적으로 트라우마가 나타난 것은 올해 2월 16개 지방경찰청에 성폭력특별수사대가 설치된 이후부터다.

수사관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가해자에 대한 극도의 분노, 남성에 대한 불신감, 어린 자녀에 대한 과도한 걱정 등으로 나타난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수사관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의 실체를 접하면 경찰 생활을 오래한 이들도 충격을 받고 당황한다"며 "피해자와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둬야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과는 달리 경찰 수사관들에 대한 관련 연구는 아직 진행된 것이 없어 트라우마를 겪는 인원, 증상의 형태 등 자료조차 없다.

특별수사대는 올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간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 성폭력 사건 1,960건을 수사했다. 기존처럼 형사과나 생활안전과에서 처리한다면 범죄 입증만 하면 되지만 특별수사대는 수사와 함께 피해자 상담 및 각종 지원까지 맡고 있어 사건 처리에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오랜 기간 피해자 입장에서 충격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셈이다.

현재 성폭력 수사관은 지방경찰청 특별수사대 소속 208명, 9월 전국 52개 경찰서에 신설된 성폭력 전담수사팀원 294명, 25개 원스톱지원센터에 파견된 수사관 98명 등 600명에 이른다. 2015년까지 현재의 두 배 수준인 1,100명으로 늘어나면 수사관들의 트라우마 문제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경찰은 12일부터 이틀간 성폭력 수사관들이 참여하는 힐링캠프를 열기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내년에는 서울 보라매병원의 경찰 트라우마센터와 연계해 체계적인 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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