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앞두고 인터넷 포털에 그의 이름을 쳐 봤다. 가장 먼저 자동 완성되는 연관 검색어는 '리처드 용재 오닐 눈물'.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5)은 발달 장애를 가진 채 미국으로 입양된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조부모 밑에서 자란 개인사가 널리 알려지면서 유독 눈물 흘리는 모습이 대중에 많이 노출됐다. 최근에는 전세계가 그의 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11월말 뉴욕에서 열린 국제 에미상 시상식에서 그가 출연한 TV다큐멘터리 '안녕?! 오케스트라'가 아트 프로그램 부문 대상을 수상하자 오닐은 시상대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연말 공연 일정을 위해 귀국한 오닐을 11일 만났다. 그는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닌데 그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차별로 고통 받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치유되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의미여서 기뻤죠. 동시에 아이들의 롤 모델로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나의 모습을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보여드릴 수 없어 슬프기도 했어요."
그에게 올 한 해는 수많은 꿈이 이뤄진 동시에 상실의 고통도 컸던 해다. 평소 존경하던 영국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 지휘자 앤드류 데이비스와 협연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절친했던 시애틀 실내악협회 예술감독 토비 삭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무엇보다 "후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던 그의 희망대로 '안녕?! 오케스트라'가 계속 연주 활동을 할 수 있게 됐고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무대에도 섰다.
이번 한국 일정 중에도 일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와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외에 '안녕?!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닐은 16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이 악단 정기 연주회의 지휘를 맡는다. 그는 아이들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언급하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누리와 은아는 정말 키가 많이 컸어요.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로 심각하고 어두웠던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제게도 성장할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됩니다."
그는 비올리스트 최초로 줄리아드 음악원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획득하고 에버리 피셔 그랜트상을 수상하는 등 부단한 노력으로 음악 인생을 일궈 왔다. 하지만 이번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그의 가정사에 또 다시 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 이상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제 경험은 곧 저라는 존재 자체죠. 아이들이 나무와 별이 공존하는 자연의 이치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함께 있는 그 자체로 기적이고 선물이라는 걸 알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속속들이 내보이는 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죠."
내년이면 한국 데뷔 10년차를 맞는 그는 내년 3월 이를 기념하는 독주회를 열고 펜데레츠키의 '현을 위한 신포니에타'와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등을 연주한다. "음악회는 관객의 각기 다른 영혼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는 그는 "지난 10년 간 비올라가 어떤 악기인지부터 소개하려 애썼다면 다가올 10년은 현대음악 등 도전적인 레퍼토리도 좀 더 많이 연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연주자는 연주곡과 작곡가, 곡에 담긴 이야기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해요. 관객과의 신뢰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죠."
오닐은 내년에 작곡가 존 하비슨이 그에게 헌정하는 현악삼중주곡 녹음(1월), 3년째 활동 중인 에네스 콰르텟의 유럽 무대 데뷔(2월), 앙상블 디토의 정기 공연(6월) 등의 일정도 소화해야 한다. 늘 빡빡한 스케줄이지만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삶의 철학이 있어 힘들지 않다는 그다. "'안녕?! 오케스트라'의 극장판이 개봉되고 나서 '너무 좋은 사람으로만 보이려고 한다'는 비판도 좀 들었어요. 사실 제가 원하는 건 한 가지에요. 오케스트라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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