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과 방만은 정부의 보호막 아래서 자라난 쌍둥이.'
정부가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곳이 총 295개에 달하지만, 자산 규모가 5,000억원을 넘는 대형기관은 63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공공기관 대책은 사실상 상위 30~40개 기관에 대한 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정상화의 두 가지 큰 줄기는 '부실 축소'와 '방만 해소'이다.
부채과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12곳은 공기업이라는 지위가 사라진다면 바로 부실기업으로 떨어질 정도로 경영상태가 심각하다. 특히 138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짊어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순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466%에 달한다. 한국전력은 이자를 내야 하는 금융부채가 54조원에 달하는데도 지난해 3조원의 적자를 낼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12개 부채과다 공기업 가운데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장학재단을 제외한 10개 기관의 경우 영업이익 합계(3조4,000억원)로 이자비용(7조3,000억원)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공기업이 과도하게 많은 빚을 지고 부실 상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정부의 국책사업에 동원됐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이들 공기업에서 증가한 115조원의 금융부채 가운데 30% 가량은 국책사업 수행에 따른 것이며, 나머지 15% 가량은 정부의 공공요금 통제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는 표면상 이유일 뿐 공기업 특유의 비효율성이 부실을 키웠다는 입장이다. 민간 기업이라면 수익성이 악화되면 유휴자산 매각에 적극 나설 텐데, 주인 없는 공기업은 이러저러한 핑계로 자산 매각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나주범 기재부 재무경영과장은 "이번 대책에서 자산관리공사나 민간 운용사가 공기업 자산 매각을 위탁 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실로 고민하는 쪽의 반대 편에는 독점적 시장지위를 만끽하며 직원들이 돈 잔치를 벌이는 곳도 있다. 바로 '방만경영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된 20개 공기업이다. 사행산업(한국마사회ㆍ강원랜드), 금융관련 공공기관(한국거래소ㆍ코스콤ㆍ수출입은행ㆍ예탁결제원ㆍ한국투자공사) 등으로 이들 기관은 공식적인 임금 이외에 복리 후생비 명목으로 직원 1인당 1,400만~570만원 가량을 지급하고 있다.
무역보험공사의 경우 해외 유학간 중고생 자녀에게 월 1,000달러를 지원하고 있으며, 한국거래소는 회사 창립일과 근로자의 날에 각각 7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강원랜드는 직원이 정년 퇴직하면 그 자녀를 채용하고 있다. 마사회는 6월말 현재 은행에 맡겨 둔 현금성 자산이 2,037억원이 넘고 올해 이자수익만 3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역대 정권과 비교해 가장 강력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공기업 부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문과 함께 공기업 부채 규모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위기 의식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기업 총부채는 565조8,000억원으로 국가채무(446조원)보다 무려 120조원가량 많은 상태이며, 국제통화기금(IMF)와 주요 신용평가기관 등이 한국 경제를 평가할 때 가계부채와 함께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급증하는 공기업 부채를 이번에 돌려 놓지 않으면, 국가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될 정도"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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