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조성민(29)씨는 점심식사 후 음식점을 나서며 자연스럽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는 순간 벽에 쓰여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담배 피우지 마라!' 밑도 끝도 없는 반말에 욱했지만 바로 옆 'CCTV 녹화중'이라는 문구를 보고 물었던 담배를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조씨는 거리 곳곳에 붙은 금연표지판에 떠밀리듯 50여m를 이동해서야 겨우 안전한 흡연 장소를 찾았다.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인 뒷골목. 이번엔 붉은 글씨의 경고문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쓰레기 무단투기시 벌금 20만원' 조씨는 경고문을 등진 채 바닥에 담배꽁초를 슬쩍 떨어뜨리고는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갔다.
길거리는 물론 사무실이나 음식점 등 일상에서 금지 표시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지 말라'는 메시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런 경우 매사에 눈치를 보거나 외부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수동적인 성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주변에 얼마나 많은 '금지' 가 존재하고 있을까?
지난 4일과 5일 서울 명동과 인사동, 강남역 일대에 부착된 금지나 경고 메시지의 개수를 종류별로 조사해보았다. 총 13km에 이르는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며 바닥과 기둥, 건물 출입구, 외벽 등에서 발견한 금지 혹은 경고 표시는 1,968건에 달했다. 약 7m에 한 개 꼴로, 건강한 성인의 보폭을 기준으로 아홉 걸음 마다 한번씩 '금지' 혹은 '경고'를 접하는 셈이다. 종류별로는 '금연'이 650개로 가장 많았고 왠지 압박감을 주는 'CCTV 녹화중'이라는 경고문도 353개나 눈에 띄었다. 이 밖에 주정차금지(304)와 음식물반입금지(97), 쓰레기투기금지(96), 진입금지(93), 촬영금지(46), 애완동물출입금지(37) 등이 뒤를 이었다.
명동에서 만난 직장인 이정연(24)씨는 "평소 금연 표시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금연구역이 아닌데도 단속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을 자주 느낀다."라고 말했다. 금지하거나 금지 당하는데 익숙해진 탓일까? 반드시 금지할 필요가 없거나 실효성이 떨어지는데도 일단 붙여놓고 보는 경우도 많다. '촬영금지' 나 '음식물반입금지' 의 경우 어겼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제지한다는 곳은 몇몇 의류매장을 제외하곤 찾을 수 없었다. 상담심리 전문가 박성현 박사는 "금지나 경고의 메시지는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요소지만 지나칠 경우 구성원에게 심리적 억압으로 작용해 우울증이나 공허감 등 각종 정신병리의 근원이 될 수 있다."라면서, "먼저 불필요한 강제나 통제를 줄이도록 노력하고 불가피한 경우 '쓰레기는 10m 전방 000에 버릴 수 있습니다' 와 같이 능동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했다.
"금지" 홍수 속 안전사고 예방 표시는 "가뭄"
넘쳐나는 경고문구 속에서도 안전사고와 관련된 표시는 오히려 인색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지역 3곳을 합쳐도 '미끄럼주의' '추락주의' '손대지 마시오'등 안전사고와 관련된 주의 표시는 채 10%도 되지 않았다. 건물 구조상 추락이나 충돌위험이 있는 곳에도 주의 표시 대신 금연 표시가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정작 필요한 지점에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도 많았다. 인사동과 명동의 경우 이면골목 곳곳에 쓰레기 더미가 있었지만 구청에서 붙인 안내문보다는 인근 주민들이 갈겨쓴 경고문이 아무렇게나 붙어있어 오히려 미관을 해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과태료 표시가 달라서 혼란을 더하는 경고문도 있었다. 인사동에서 본 쓰레기무단투기금지 표시는 4가지 종류, 모두 종로구청에서 설치한 것이지만 과태료는 각각 10만원, 20만원, 100만원 이하로 다르게 표기돼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신고포상금 월 80만원'이라고만 표기돼 있었다. 종로구청은 쓰레기의 종류와 양에 따라 10만~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금연구역 위반은 10만원, 담배꽁초와 컵 등 휴대물품 투기는 5만원, 주·정차위반에는 4만~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각 업소에서 붙인 음식물반입금지, 애완동물출입금지, 촬영금지 등의 표시는 알아보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크기와 색상 디자인이 제 각각인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더구나 일부 표시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강제할 수는 없더라도 지자체에서 표준도안을 제시하거나 권고한다면 최소한의 통일성은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은 2001년부터 공공안내그림표지(픽토그램)를 국가표준으로 제정해 오고 있으며 현재 337개 시설표지와 안전표지를 한국표준정보망(http://www.kssn.net)을 통해 보급하고 있다.
인터넷에선 이런 금지도… 지도 규제, 실효성 있나
서울 강남구, 광주 북구, 울산 울주군의 공통점은? 중식당 '청와대'가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지도에서 청와대를 검색하면 모두 96개의 결과물을 보여주지만 한국인 모두가 알고 있는 청와대는 없다. 위성지도에도 경복궁까지만 선명하게 나와 있을 뿐 청와대 일대는 산으로 처리돼 있다. 어떤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 1급 보안시설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구글어스에서 검색해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1'이라는 명확한 주소와 함께 청와대 본관과 앞마당의 넓은 녹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부속건물의 위치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다음지도에서 국방부를 검색해도 마찬가지다. 국립박물관과 전쟁기념관 외에는 모두 산으로 표시돼 있다. 서울 도심에 이렇게 큰 녹지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국방부 주변에 주한미군시설이 위치한 탓이다. 휴전선 인접지역은 아예 위성사진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경기 파주시 북부지역 주민들은 인터넷 지도에서 거주지의 지형을 파악할 수 없다. 구글어스에선 민통선 안에 있는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는 물론 휴전선 전 구간을 샅샅이 살필 수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국토교통부의 국가공간정보 보안관리규정 때문이다. 규정에 따르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국가보안시설 및 군사시설이 노출된 3차원 위성자료'는 비공개 대상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민감한 보안정보가 담긴 지도가 일반에 무차별 노출되는 것은 당연히 금지해야 하지 않냐"고 반문하면서도 실효성이 없는 규제가 아니냐는 물음에는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다만 구글은 외국업체이고 해외에 서버가 있어 현실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처지라는 입장이다. 국내 한 포털업계 관계자도 "기업 입장에서는 지도서비스에 큰 불편이 없고, 이용자들이 굳이 요구하지 않는 상황에서 업계가 앞장서서 보안규정을 풀어달라고 요청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다시 구글지도에서 백악관을 검색해 보자. 건물외부를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스트리트뷰는 물론 내부 곳곳을 이동하면서 볼 수 있는 가상현실(VR)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보안규정을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순 없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보안을 내세워 규제를 당연시하고 관련업계와 이용자들이 통제에 무감각해진 사이, 스스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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