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자란 동네의 이름은 되찬이이다. 되차니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되찬인데 '이'를 더 넣어 부르는 건지, 데찬이인지 데차니인지 그것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아니고 뒤천이인지도 모른다. 만약 뒤천이라면 '뒤쪽'이라는 말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려서는 동네 이름에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곳을 떠날 때까지 궁금증을 가져본 적도 없다. 나중에 가족을 이끌고 '성지(내가 태어난 곳이니까) 순례'를 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고향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정확한 발음과 뜻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그냥 그렇게, 예전처럼 그대로 살고 있었다. 물론 내 어릴 적의 어른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그 송정리에서도 우리 집과 뒷집 영순이네, 그러니까 겨우 집 두 채가 있던 곳 일대의 이름이 바탕이였다. 내 멋대로 좋게 해석하면 우리 집이 있는 곳이 되찬이라는 동네의 한복판, 중심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바탕이에서 뒷산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구렁말이다. 학교에 가기 위해 신작로로 나가려면 아랫말을 거쳐야 한다.
충남 공주군(지금은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2구의 그 마을을 지금은 송정리라고 부른다. 松亭里, 즉 소나무 정자 마을은 소나무가 많아서 정자를 이룬 곳 같다는 ?裏?것이다. 별명이 '계룡산 호랑이'였던 우리 할아버지가 두루마기 휘날리는 이장으로 동네를 휘어잡고 주름잡던 시절,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언젠가 지으신 이름이라고 한다(개인이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한지?).
되찬이에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각골이다. 고모네가 살던 동네다. 그 동네의 한자 이름은 甲洞(갑동)이다. 각골이라면 各(각각 각)이나 角(뿔 각)동이 돼야 했을 텐데, 갑동이 된 걸 보면 원래 갑골인데 내가 각골로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것도 불투명하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 유달리 소나무가 무성했던 것은 아니다. 송정리라는 이름은 전국에 수도 없이 많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강원 고성군 거진읍,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화촌면, 경기 화성시 마도면, 경남 김해시 진례면, 거창군 거창읍, 남해군 미조면, 경북 칠곡군 지천면, 전남 곡성군 오곡면, 진도군 의신면, 충남 공주시 의당면, 논산시 연산면,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부여군 양화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증평군 도안면, 청원군 북이면에 다 송정리가 있다.
이렇게 아주 흔하디흔한 이름인데, 왜 되찬이를 송정리라고 하셨는지 궁금하다. 결국 할아버지의 상상력 창의력 기획력 작명력 부족인가? 충남 부여군 초촌면에도 송정리가 있긴 한데 그곳은 丁(장정 정)을 쓴다. 경기 안성시 서운면,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의 송정리는 井(우물 정), 광주 광산구 송정리, 전남 해남군 삼산면, 강진군 칠량면, 경남 함안군 산인면의 송정리는 汀(물가 정)이다.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송정리라는 이름을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라북도에는 우리 동네 이름과 같은 송정리가 전혀 없었다. 시 군 면 리 다음의 작은 마을 이름까지 다 찾아보지는 못했다. 송곡리, 송내리, 송산리, 송상리, 송천리, 송풍리, 송현리 등 소나무가 들어 있는 이름은 꽤 많았다. 전북 남원시 송동면은 면 이름 자체에 소나무가 들어 있으니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걸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정자를 뜻하는 송정리는 하나도 없고, 다른 송정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그나마 기분이 좀 좋다는 거지 뭐. 고향마을 이름이 여기저기 많으면 누군들 기분 좋겠어? 정말 기분 나쁜 게 하나 있는데 이런 데서라도 풀어야지. 정말 기분 나쁜 게 뭐냐면 충남 계룡시라는 이름이다. 계룡시는 육해공 3군 본부가 들어서면서 점점 더 커져 2003년 충남 논산시에서 분리돼 탄생한 도시이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충남 공주시 계룡면 사람이다. 그런데 어럽쇼, 계룡대라는 군인 동네가 슬그머니 크고 자라서 계룡시로 승격해버린 것이다. 그러면 우리 동네 계룡면은 이제 뭐가 되는 거야? 계룡산은 원래 우리 차지였어. 계룡면이야말로 자라고 크면 계룡시가 될 몸이었다 이거지. 그런데 어떻게 남의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갖다 쓰느냐 말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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