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과거ㆍ현재의 대통령 및 미래 대통령으로 유력한 정치인이 동승했다. 44대 버락 오바마(민주당) 대통령, 43대 조지 W 부시(공화당) 전 대통령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9일(현지시간) 에어포스원으로 남아공에 도착해 10일 열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했다.
미국 언론들은 만델라가 미국 대통령들에게 화해를 선물로 남길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오바마와 부시가 편도 10시간 가까운 비행에서 소원한 관계를 해소했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는 전ㆍ현 대통령들이 조문 정치로 불화를 해소하고 우정까지 나눈 예가 적지 않다. 33대 해리 트루먼(민주당)은 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공화당)와 10년 넘게 불편한 관계를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이 화해한 계기는 35대 존 F 케네디의 장례식이었다. 1963년 11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케네디 장례식에 참석한 뒤 리무진을 함께 타고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트루먼의 즉석 제안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묵은 감정을 씻어냈다.
38대 제럴드 포드(공화당)와 39대 지미 카터(민주당)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조문여행을 하며 화해했다. 미국의 조문사절이던 두 사람은 보잉 707기 안에서 오랜 시간 대화하며 서로 같은 점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두 사람은 이후 25년 동안 20여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친구가 됐고 상대가 죽으면 헌사를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약속대로 카터는 2006년 포드의 장례식에서 헌사를 했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은 41대 조지 H 부시(공화당)와 42대 빌 클린턴(민주당)을 깊은 관계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그 전에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나 로마 행 비행기와 장례식에서 함께 하는 동안 대화하고 이해의 폭을 넓혔으며 나중에는 가족까지 교류하는 사이가 됐다.
오바마는 조지 W 부시가 주도한 테러와의전쟁을 비판하고 경제 위기를 이전 정권의 유산으로 간주하는 발언을 했다. 그럴 때마다 부시는 "나의 침묵이 평가받을 것"이라며 대응을 삼갔다. 지금은 두 사람의 화해가 오바마에게 더 필요한 상황으로 변했다. 부시 진영에서 "오바마 집권 2기가 부시 4기 임기 같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오바마는 대외 정책에서 부시 정책을 많이 수용하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은 "이번 여행으로 둘의 관계가 돈독해질 것으로 보는 게 '안전한 베팅'"이라면서 힐러리의 동승도 긍정적으로 보았다.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있고 대통령의 부인을 지냈기 때문에 클린턴이 역할을 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오바마는 부시를 위해 전용기의 의무팀 좌석을 개조하는 성의를 보였다. 로이터통신은 "세 사람과 오바마 부인 미셸 오바마, 부시의 부인 로라 부시가 전용기 앞쪽 회의실 원탁에 둘러 앉아 담소했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빌 클린턴과 지미 카터는 남아공 현지에서 합류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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