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핵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고 있다. 이른바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이다. 북한은 지난해 5월 헌법을 개정해 핵 보유국 지위를 공식화 한데 이어 지난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을 공식 발표했다.
병진노선은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핵능력을 발전시켜 재래식 무기에 드는 국방비를 줄이면 국가 재원을 경제건설에 집중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방비를 늘리지 않고도 전쟁 억제력과 방위력을 결정적으로 높여 인민생활 향상에 모든 역량을 쏟을 수 있다"며 병진노선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병진노선은 사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개발에 주력하면서 거덜난 빈 곳간을 물려받은 김 1위원장으로서는 병진노선을 통해 핵 보유국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하고 경제를 중시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만의 통치이념을 제시하지 못하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답습해야 하는 김 1위원장은 병진노선이라는 새로운 독트린을 통해 강성대국의 유훈을 관철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덧칠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기대와 달리 병진노선은 '김정은 체제'를 덫에 가두는 자충수가 되고 있다. 우선 병진노선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핵개발에 따른 엄청난 기회비용을 대가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핵개발에 15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1년 여간 주민 전체의 배를 불릴 수 있는 돈이다. 핵능력의 고도화를 이루려면 추가 비용부담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동시에 경제력에 걸맞지 않은 엄청난 규모의 재래식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어 국방비가 양쪽으로 새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자본유입이 막혀 경제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한정된 국가재원을 핵과 경제건설에 나눠 투입하는 것은 무모하다. 병진노선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전략적 오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병진노선의 더 큰 함정은 이로 인해 주변국을 끊임없이 자극한다는 점이다. 북한이 병진노선을 고집하는 한 핵능력을 고도화하기 위해 핵실험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제사회의 반발을 초래하고 대북제재는 더 강화될 것이다. 지난 2월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유일한 버팀목인 중국마저 등을 돌려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채택에 동의하고 별도의 대북제재 리스트를 발표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건설에 필수적인 외자 유치는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병진노선이 아니라 핵개발이 경제건설을 가로막는 '상충노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거 실패사례도 있다. 김일성 주석은 1961년 5ㆍ16쿠데타에 충격을 받아 62년부터 '국방ㆍ경제 병진노선'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국방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아바타'로 불리는 김 제1위원장의 병진노선은 그 복사판이다. 북한이 병진노선에 집착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과거의 오류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장은 "병진노선은 김정은 체제의 생존 논리일 뿐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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