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이 늘면서 눈에 띄게 바뀐 것은 무엇보다 병영 문화입니다. 특히 여성을 비하하는 농담 같은 성희롱이 크게 줄었어요. 또 조직 내에서 필요한 능력을 남성 중에선 찾기가 어려운 경우 여성이 맡아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어요. 어떤 조직이든 남성과 여성이 공존해야 잘 돌아가는 법입니다. 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지난 10월 30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스웨덴군 총사령부 청사에서 만난 피터 외베리 인사참모장(육군 대령)은 왜 군에 여성이 필요한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군내 여성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차이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다국적군에 파견된 자국 군인들이 상대국 주민 인권을 존중하게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게 그의 기대였다.
스웨덴은 1901년부터 100년 넘게 유지해 오던 징병제를 2010년 7월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했다. 동서 냉전 종식으로 더 이상 커다란 덩치의 군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여성이 스웨덴군의 일원이 된 것은 30여년 전부터다. 1980년 공군을 시작으로 여성도 입대를 지원할 수 있다. 외베리 대령은 "현재 전체 군 복무 지원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가량"이라며 "징병제 폐지 전에는 자원 입대하는 여군 비율이 5% 안팎에 불과했는데, 모병제로 전환한 뒤 여군 지원자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군이 경쟁력 원천
이웃 나라인 노르웨이는 더 적극적이다. 지난 6월 노르웨이 의회는 아예 여성 병역 의무화 법안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강제 징집 대상을 여성으로까지 넓힌 것이다. 징병제 폐지가 대세인 유럽 내에서 여성의 군 복무를 의무화하는 것은 노르웨이가 처음이다. 결의안대로라면 2015년부터 노르웨이 여성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1년 간 의무적으로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 노르웨이 군 당국은 현재 12~13% 수준인 여군 비율을 25%까지 높일 계획이다.
노르웨이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여군 비율을 끌어올리려는 것은 한층 더 훌륭한 군 자원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국방부 산하 징병센터에서 만난 페테르 뤼스홀름 센터장(육군 대령)은 "모병제 하에서는 군 복무를 하고 싶어하는 지원자만 데려올 수 있지만 징병제를 시행하면 군에 반드시 필요한 인력까지 차출할 수 있다"며 "여성 징병제는 최고 중의 최고를 선발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징병제든 아니든 군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군 내 여성의 수와 역할을 확대하려는 것은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추세다. 공식적으로 국가 선언을 한 1948년 이전부터 여성 징집을 실시해온 이스라엘의 여군 비율은 30%에 달한다. 남성은 10명 중 7명, 여성은 절반이 징집된 결과다. 18세가 된 이스라엘 여성은 자국 남성(3년)보다는 짧지만 한국 남성(21개월)보다 긴 2년 동안 이스라엘방위군(IDF)에서 복무한다.
이스라엘 여성들은 6주간 기본 군사훈련 후 통상적으로 서무나 통신ㆍ전자, 운전ㆍ정비, 각종 교관, 헌병, 복지, 경찰 등 비(非)전투 병과에서 복무한다. 이스라엘 국방부 군참모부의 노리 카플란 대위는 "여성들은 '장기간 관찰' 같은 분야에서 남성보다 탁월하다"며 "그래서 감시나 관찰과 관련한 보직이 여성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투병으로서 여성은 한계가 있지만 성별 특성에 맞는 보직을 맡긴다면 군 전체의 전력이 크게 상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원대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운영연구센터 현역연구위원은 "예컨대 남을 설득해야 하는 정신교육이나 인사, 전투지원 등 임무의 경우 꼼꼼하고 치밀한 여성에게 강점이 있는 만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비역 대위인 이지연 동부산대 부사관과 교수는 "현대전에서는 적을 섬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돼야 하는 게 점령지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며 "이기는 전쟁을 위해 사람과 소통하는 데 장점이 있는 여성의 군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바꾸는 병영
여군이 늘어나면 우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군의 조직 문화다. 군대의 특징으로 꼽히는 극단화된 남성문화가 깨지면, 이와 결부된 비효율성 등이 더불어 극복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박효선 청주대 군사학과 교수는 "군 내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이나 인권 침해는 남성이 지배적인 조직에서 흔히 드러나는 남성우월주의나 권위주의, 경직성 때문인 경우가 많다"며 "이스라엘 같은 강군이 되려면 병사 개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주도해갈 수 있는 게 바로 여성"이라고 말했다.
여군 확대는 사회 전반의 양성평등 실현과 함께 진전을 거두고 있다. 노르웨이 징병 센터의 뤼스홀름 센터장은 "여성 징집 추진에는 정치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려는 취지도 있다"며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군대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성(性) 평등 퓰컥?강한 노르웨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도 발달해 있다. 2003년에는 공기업과 상장 기업 임원의 4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법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을 정도다.
노르웨이의 젊은 여성들 상당수도 2015년부터 시행되는 여성 징병이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되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노르웨이 징병 센터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고 있는 프리다 본삭 로브브로테(여ㆍ19) 일병은 "여전히 기업이나 정부 부처의 고위 간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여성이 군에 들어와 기여한다면 '유리 천장'을 깨는 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군 관계자는 "여성 징집은 군 내 성폭력 같은 징병제의 부작용과 병역 자원 감소, 복무 기간 단축 등이 야기하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선택이 될 수 있지만 여성의 반발과 예산 부족이란 벽을 넘긴 어려울 것"이라며 "정치인들의 전향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톡홀름ㆍ오슬로=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텔아비브=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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