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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칼럼/12월 11일] 대가족을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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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칼럼/12월 11일] 대가족을 허(許)하라

입력
2013.12.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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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파탄과 가족분열의 시대다. 격하게 쪼개지고 헐벗은 삶이 적잖다. 먹고 사는 기초민생이야 일정부분 해결됐다지만 출구상실의 짜증과 불행은 일상적이다. 적자생존ㆍ승자독식의 작동논리가 자칭 '하류인생'의 서민을 대량으로 낳았다. 중산층의 붕괴다. 국민행복을 내걸며 고개를 숙이던 이들은 선거이후 민생을 떠났다. 저 멀리 고고한 곳에서 그들만의 행복을 좇을 뿐이다. 삶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맘과 뜻은 단언컨대 찾기 힘들다. 애초부터 없었으니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라진 중산층은 어디로 갔을까. 파편ㆍ고립된 날카로운 삶에 포위돼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틴다면 지나친 추측일까. 아닐 것이다. 의외로 우리 주변엔 미끄럼틀 아래서 아등바등 살아내려는 이들이 적잖다. 악화된 불행지표까지 들이댈 필요는 없다. 자살률ㆍ우울증 등 병리현상은 충분히 심각하다.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그 수치일 뿐이다. 공정은 옅어졌고 정의는 사라졌다. 오직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편린적인 자구책만 강요된다. 매서운 황소바람을 막아줄 정부복지는 기대이하다. 그래서 약자에게 겨울은 더 가혹하다. 웃음 넘치는 따뜻한 겨울 밤은 줄어들었다.

보완성의 원리라는 게 있다. 복지제공의 보완순서를 일컫는다. '개인→가족→지역→사회→정부'의 순서로 복지를 보완하자는 논리다. 복지수요를 소단위에서 해결한 후 그 부족분을 심화하는 형태다. 출발은 가족이다. 가족이 튼튼해질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찮다. 가족해체ㆍ붕괴가 일상다반사다. 가치판단을 떠나 1인 가구 급증(25.9%)도 심상찮다. 스스로 택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홀로 살기도 한다. 독거노인과 만혼(晩婚)ㆍ비혼(非婚)을 보건대 독거추세는 대세에 가깝다. 다만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 없는 게 그 불편한 부작용 탓이다. 무연사회의 고독사 공포와 전쟁으로 비유되는 세대갈등은 가족시스템의 기능부전이 낳은 상징결과다.

이쯤에서 주목해야 할 반작용이 있다. 대가족주의다. 가령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ㆍ연어족의 등장은 시대환경이 낳은 당연지사다. 저성장ㆍ고령화로 '졸업→취업→결혼→독립'의 표준모델이 힘들어지자 그 타개차원에서 떠오른 게 대가족주의다. 비용지출을 줄이려는 경제적인 선택이다.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대가족의 부활로 얻을 수 있는 부가효과가 만만찮아서다. 경기불황을 넘는 힘을 축적하고 길게는 관계단절에서 비롯되는 유무형의 복지수요를 벌충할 수 있다. 최소한의 복지공동체답게 부모봉양ㆍ자녀부양의 딜레마를 세대분업에서 해결할 수도 있다. '갈등→융합'으로 전환시킬 기초안전판으로서 대가족주의라는 카드가 갖는 정합성이다.

대가족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새로운 갈등과 분열씨앗이 될 여지도 많다. 다만 응원ㆍ준비된 대가족이면 얘기가 다르다. 시대가 변했듯 전통적인 대가족주의의 설명력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를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즉 진화된 대가족주의가 필수다. 고정관념을 깬 근거(近居)형 대가족이 그 예다. 일본에선 국물이 식지 않는 거리라 해서 '15분의 법칙'까지 나왔는데, 근처에 살며 대가족의 경제ㆍ심리적 합리성을 높이려는 방식이 유행이다. 3세대의 현대화된 공존모델로 고려해봄 직하다. 정책지원이 있다면 더 좋다. 정부가 책임 못질 복지를 대가족이 맡겠다는데 약간의 인센티브는 당연하다. 1인 가구를 차별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가족에 힘을 싣는 간접지원이 바람직하다.

반성과 준비의 연말이다. 한 해를 결산하는 소중한 기회다. 아마도 그 키워드는 본인과 가족의 행복일거다. 왜 사는지 그 공통분모는 행복일 수밖에 없다. 이때 대가족을 화두로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일본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아이러니컬하게 낙후된 시골로 유명한 서일본지역이다. 1위(야마가타)와 2위(후쿠이) 모두 일자리도 돈도 별로 없는 곳이다. 이유가 뭘까. 유력가설 중 하나는 가족관계다. 세대인원이 각각 2.94명, 2.86명으로 전체평균을 한참 웃돈다. 출생률도 높다. 한 마디로 가족이 많다. 현대화ㆍ도시화ㆍ공업화의 선두주자인 대도시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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