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992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중국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중국도 비공개 합의해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아사히신문은 10일 일본 외무성 중국담당 과장과 주일 중국대사관 측의 대화를 기록한 1992년 2월19일자 비밀문서를 입수,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일본 측은 "위안부 문제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번져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주요 인사 왕래를 앞두고 이런 이야기가 중일관계의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중국에 전달했다. 일본 측의 제안에 중국 측은 "사안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라며 "중국민의 감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므로 신중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당시 대화는 양국의 국교정상화 20주년을 맞아 1992년 10월 아키히토 일왕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뤄진 것이다. 신문은 "양국 외교 당국자가 대화를 나누기 열흘 전 중국인 위안부의 존재를 입증하는 자료가 옛 방위청에서 발견됐다"며 "(일왕의 중국 방문에) 위안부 문제가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적극 나섰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같은 해 9월 25일자 기록에는 일왕의 방중 기간에 "본건(위안부 문제)이 거론되느냐"는 주일 캐다나 공사의 질문에,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 심의관이 "우리 쪽에서 거론할 의향은 없으며, 상대방(중국)도 거론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내각 관방부 부장관을 지낸 이시하라 노부오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왕 방중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내각의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에 외무성을 통해 수 차례 당부했다"고 회고했다.
아사히신문은 앞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河野)담화가 발표되기 직전인 1993년 7월 30일 무토 가분 당시 외무장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일본 대사관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심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는 것을 피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하는 등 일본 정부차원에서 위안부 문제 확산을 막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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