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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함은 조금 덜고 거울과 질문 통해 사유의 깊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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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함은 조금 덜고 거울과 질문 통해 사유의 깊이 더하다

입력
2013.12.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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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낮을 따르듯, 어머니의 결혼식은 선왕의 장례식을 자연스럽게 이어받는다. 햄릿은 축복으로 장례식을, 슬픔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이 기막힌 세상에 몸부림친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 4일 올라간 연극 '햄릿'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햄릿(정보석)과 주변 인물들의 끝없는 물음들로 이뤄진다.

막이 오르면 선왕으로 보이는 망령 앞에 선 경계병이 "넌 누구냐"고 다급하게 소리친다. 정체 모를 그림자를 향해 던지는 이 단호한 물음은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묵직한 존재론적 질문을 대표한다. 복수를 위해 모든 세속의 궁금증을 지우고 오직 원수들을 칼날 아래 눕힐 날을 기다리는 햄릿은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연출가 오경택은 '거울'이라는 도구를 통해 햄릿과 그 주변 인물들이 떨치지 못하는 여러 질문을 객석으로 전달하고 답을 찾도록 한다. 무대 뒤 주렁주렁 매달린 금속판들은 배우들이 들고 나는 문이면서 동시에 캐릭터의 내면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다. 여러 금속판이 흔들리며 내는 기괴한 음향은 인간의 추한 속내를 연상케 한다.

거울의 오브제는 무대 곳곳에 있다. 숙부 클로디어스(남명렬)와 어머니 거트루드(서주희)의 범죄를 확인한 햄릿이 복수를 다짐하며 갈등 구조가 촘촘해지는 2부에 들어서면 거울의 등장은 한층 잦아진다. 죄로 더러워진 손을 흙으로 씻으며 괴로워하는 클로디어스가 거울 앞에서 기도를 올릴 때 그 거울의 뒤에서 나타나 단도를 치켜드는 햄릿. 발성이 비슷한 두 배우는 순간 거울 앞에 마주한 도플갱어처럼 닮아 보인다.

정보석이 "가장 공들이는 장면"이라고 말했던, 햄릿과 거트루드가 맞부딪치는 2부 1장은 인간의 내면에 꿈틀대는 욕망이 얼마나 사악한지 확인하는 현장이다. 햄릿이 거트루드의 흉한 머리를 감추고 있던 붉은 가발을 벗겨 내고 강제로 거울 앞에 앉히는 장면, 곧이어 햄릿이 클로디어스가 손을 씻었던 흙을 거트루드의 얼굴에 뿌리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햄릿'의 절정인 레어티즈(박완규)와 햄릿의 검술 대결 장면은 선행하는 장들의 시각적 충격이 강한 탓에 다소 밋밋하게 다가온다. 리프트를 이용해 무대 하부에서 기계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주저 없이 칼을 들고 싸우는 두 남자에게서 '햄릿'의 비장미가 풍기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 땀을 쥐는 장면은 잠시 순연된 것이다. 모두가 쓰러진 후 갑자기 천장에서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파편들이 무대를 덮어버린다. 인물들이 죽어버린 후 늦은 카타르시스가 찾아온다. 무덤에서 일어난 인물들 속에서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들려오며 매듭을 짓는 연극 '햄릿'. 비장함을 한 숟갈 덜어낸 대신 거울과 질문을 통해 사유의 깊이를 더한 연출이 돋보인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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