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제 남편 꼭 살려 주세요”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 가을 점퍼를 입은 50대 후반의 부부가 찾아왔다. 한눈에 봐도 병자임에 틀림없었다. 곱상하게 생긴 부인은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며 애타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정도의 병색이면 긴 간호에 지칠 법도 한데 두 눈에 ‘꼭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넘쳤다. 남편은 그런 부인이 안쓰러운지 꼭 잡은 손을 문지르면서 애정을 표시했다. 부부가 쉰을 넘으면 데면데면하기 십상인데 겉모습은 신혼부부 같았다.
“금슬이 참 좋아 보입니다.”
“불쌍한 제 남편 꼭 살려 주세요.”
위로 겸 인사로 말을 건넸더니 부인의 애절한 하소연이 이어졌다. 남편이 1년 전에 위암 판정을 받았는데 그동안 전국의 유명한 병원은 다 가봤고, 좋다는 약은 다 먹어 봤지만 이제 남은 생은 1~2달이라며 굿을 해 달라고 매달린다.
굿이나 축원을 해서 병원에서도 포기한 환자를 살린 경우는 종종 있다. 나 역시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런데 점을 보니 귀신으로 인한 병이 아니다. 귀신으로 인한 병이 아니면 아무리 뛰어난 무당이라도 고칠 수 없다.
저렇게 애절한 부부에게 인정머리 없는 말을 할 수 없어 나도 열심히 기도할 테니 절이나 조용한 곳에 가서 함께 기도하라고 제안했다. 굿은 기도발이 받은 후 하면 된다고 돌려보냈다. 조만간 남편이 죽을 것 같아 둘이서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한 달 뒤 소복을 입은 남편이 꿈에 나타나서 ‘아내가 가게를 팔려고 하는데 말려 달라’고 애원한다. 뭔가 심상찮아 아침 일찍 아주머니께 전화로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남편 치료에 들어간 빚을 갚기 위해 헐값이지만 내일 매매계약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도와주려고 그러니까 팔지 말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였다. 지금은 가게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서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죽은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도와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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