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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 나훈아에 길을 묻는다

입력
2013.12.1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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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나훈아 선배를 만납니다.”

엠플러스한국 - 남강일의 가요 이야기 신유

최근 귀가 번뜩 뜨이는 소식을 들었다. 신유가 공연 영상 등의 자료를 통해 나훈아를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공연을 구상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가수에게 공연 능력은 인기와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무명 가수들은 히트곡만 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히트곡이 있더라도 공연이 흥미를 끌지 못하면 큰 성공이나 롱런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신유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운 이유는 또 있다. 신유의 활동 내용을 보면, 그는 언제나 정통을 추구했다. 지금 성인가요계는 말 그대로 디스코 풍 일색이다. 반면 신유는 ‘잠자는 공주’를 비롯해 최근 발표한 ‘나쁜 남자’까지 말 그대로 정통 가요의 맛을 제대로 살린 곡들을 위주로 불렀다. 출세곡인 ‘시계바늘’은 조금 빠르긴 하지만 그 역시 주류를 이루는 곡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통을 고수하는 신유가 대 선배 나훈아의 공연 내공까지 갖추면 어떤 열매가 맺혀질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지금의 진정성에 공연 실력까지 얹는다면 한국 성인 가요계는 또 하나의 걸출한 대스타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연과 관련된 가수(광대)의 자질을 가장 명징하게 정립한 사람은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일 것이다. 그는 ‘광대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광대 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은 인물 치레 둘째는 사설 치레 그 직차 득음이요 그 직차 너름새라.’

이렇듯 신재효는 조선 광대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내걸었다. 요즘 가수로 성공하는 조건과 비슷하다. 그런데, 나는 내용보다 순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대의 첫 번째 조건은 인물이다. 가수 하면 가창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신재효는 인물을 앞세웠다. 실제로 요즘 가수들 중에도 가창력은 좋은데 외모 때문에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재효도 ‘인물은 천생이라 변통할 수 없거니와’라는 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인물을 단순히 외모로만 보기는 힘들다. ‘인물 치레’에는 타고나는 얼굴보다는 사람 됨됨이의 비중이 더 크다. 모르긴 해도 신재효는 ‘인물 치레’를 언급하면서 김성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는 신임사화를 일으킨 간신 목호룡(睦虎龍ㆍ1684~1724)을 꾸짖은 일로 두고두고 선비들의 칭송을 받았다. 광대로서의 인물 됨됨이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준 인물이었다.

나훈아도 대중 가수로서의 자부심, 철저한 자기 관리 등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나훈아를 가수가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신유는 아직 가수로서 ‘인물 치레’와 관련해 큰 시험대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딜 가든 예의바르고 반듯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가요 관계자 및 팬들 중에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최근 들어 책도 열심히 읽는다고 들었다. 쉬지 않고 자신을 다듬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큰 광대’로 자라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인물 치레 다음은 사설이다. 사설은 판소리의 사설을 뜻하지만, 가요에 적용한다면 그 노래를 흡입력 있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스토리(혹은 스토리텔링)라고 할 수 있다. ‘황성옛터’, ‘애수의 소야곡’, ‘목포의 눈물’, ‘비 내리는 고모령’ 등 우리 가요의 ‘불후의 명곡’ 중에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곡들이 많다. 나훈아의 최고 히트곡인 ‘고향역’도 60~70년대 산업화 정책으로 일거리를 찾아 도회로 온 시골 젊은이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신유의 ‘시계바늘’도 어찌 보면 단순한 회고담 같지만, IMF와 서브프라임 사태 등으로 고단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4050세대의 등을 토닥여준 노래다. 시대성의 넉넉한 지원을 받은 노래들인 셈이다.

그러나 사설의 원래 의미를 따져서 생각해보면 노래의 배경보다는 공연할 때의 멘트에 더 가깝다. 나훈아의 공연에서 사설을 빼놓으면 무슨 재밀까. 신유도 바로 이런 대목에 집중해 선배를 연구할 듯하다. 대 선배의 깊고 넓은 사설을 터득하면 신유가 얼마나 더 성장할까. 벌써 가슴이 설렌다.

마지막은 너름새다. 너름새는 최근 발림이라는 말로 대체해 쓰는 추세인데, 발림은 ‘창자(唱者)가 소리의 가락에 따라 혹은 판소리 사설의 극적 내용에 따라 몸짓을 형용 동작(形容動作)이나 춤’을 말한다. 나훈아의 공연은 언제나 뮤지컬을 방불케 했다. 그의 공연을 보고 있으면 몇 편의 연극이나 뮤지컬을 한꺼번에 관람하는 기분이 만들었다. 발림의 효과를 극대화 했던 것이다. 신유도 작년부터 단독 공연을 시작했다. 혼자서 그 큰 무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만큼 발림을 통해 무대를 꽉 채우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사족을 달자면 나훈아는 조선 광대의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이어받은 대중가수다. 자신의 창법을 설명하면서 ‘아리랑’을 가져오고 스스로를 ‘소리꾼’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본인도 전통의 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신유가 이 큰 흐름에 가세한다는 소식이 그지없이 반갑다. 빠른 노래 일색의 가요계에서 정통을 추구하는 신유의 존재는 젊은 가수들 중에서 독보적이다. 그런 그가 보다 깊은 공연의 세계를 터득한다면 성인가요계는 가장 훌륭한 레퍼토리로 무장한 공연자 한명을 더 얻게 되는 셈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 시대의 ‘큰 광대’로 성장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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