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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 2부 군대를 바꾸자] <2> 상명하복 없는 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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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 2부 군대를 바꾸자] <2> 상명하복 없는 병영

입력
2013.12.0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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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26㎞ 떨어진 툰에 위치한 전차포병학교.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 산맥을 뒤로 한 채 3주 전 입대한 신병들이 한창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었다.

"가스! 가스! 가스!"

적의 생화학폭탄이 떨어졌다는 소대장 플로린 코프멜(21) 소위의 말에 훈련병들이 얼른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전투화 덮개, 보호의 등 화생방 보호 장구를 착용하는데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코프멜 소위는 "생화학무기 오염지역을 벗어나야 한다"며 전방 500m 지점을 가리켰다. 훈련병들이 줄지어 이동하던 중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 중인 마르코 지나노(20) 중사가 손을 든다. "훈련병들에게 생화학무기의 오염반경이 수십㎞ 이상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면 좀 더 멀리 이동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의 건의는 받아들여졌고, 훈련병들은 방독면을 쓴 채 500m를 더 걸었다. "묻지도 않은 말 누가 하라고 했느냐"는 타박은 없었다.

스위스 병사 훈련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다. 합당한 의견은 작전에 반영된다. 전차 조종수가 주특기인 벤야민 뷔르키(20) 중사는 "적의 포탄 공격을 피하기 위한 회피기동 훈련에서 이동방향 등을 결정할 때 조종수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며 "전차 운전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조종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병사는 '군복 입은 시민'

군대가 경직된 이유는 계급서열에 따른 일방적 소통 때문이다. 아무리 불합리적 결정이라도 상관의 명령은 따라야 하고, 거꾸로 상향식 의견 수렴은 원활하지 않다. 유사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는 있지만 늘 합리적 결정이 나오는 것은 아닌데, 선진군 군대는 활발한 의사소통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만난 야엘 코헨(19ㆍ여) 상병은 "하바드 다앗(히브리어로 존경하는 의견이란 뜻) 시간을 통해 훈련 중 못 생겼다고 인격 모독한 상관의 사과를 받아냈다"고 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일과 후 지휘관이 1시간가량 병사들과 함께 그날 훈련에서 부족했던 점이나 개선사항 등을 자유롭게 토론하는 하바드 다앗 시간을 갖는다. 군 복무 과정에서 겪는 불만을 해소하고 장교와 사병, 선임과 후임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다.

코헨 상병은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하는 군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수직적인 서열관계가 확고해 '까라면 까라'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우리 군과는 다른 모습이다.

선진 징병제 국가들이 수직적인 군 조직을 수평적으로 운영하게 된 데에는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컸다. 병사를 '군복 입은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군도 특수 법칙이 적용되는 외딴 섬이 아닌 사회의 일부로 여겨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스라엘 엘리트 부대인 탈피오트 출신으로 상수망관리기업 '타카두'를 창업한 아미르 펠레크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다가 1948년 건국 이후 하나의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로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중요했다"며 "이스라엘의 수평적 군대도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재건의 주축이 된 키부츠(협동농장) 문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공동소유ㆍ공동생산 방식으로 운영되는 키부츠는 남녀노소 관계없이 개개인의 의견을 중히 여긴다.

스웨덴과 오스트리아는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민주주의, 스위스는 모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군을 보다 수평적으로 만들었다면 대만은 30년 넘게 이어진 군부독재에 대한 반감이 군대문화 개선을 일궜다. 장타이린(張台隣) 대만 국립정치대 교수는 "1987년 계엄령 해제 전까지 군은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권위적인 '국민당의 군대'였다"며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군대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린 군대 전력 더 강해져

이들 국가에서는 임무수행 등을 제외한 일상에서는 계급을 내세우지 않는다. 사소한 것부터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뜻이다. 마주칠 때마다 경례를 하는 우리 군과 달리 스위스 군은 처음에만 경례하고 나머지는 가벼운 목례로 대신한다. 상∙하급자 간 거수경례를 하지 않고 악수를 나누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장군이 군 식당에서 병사들과 똑같이 줄을 서 밥을 먹는 것은 예사로운 풍경이다. 스웨덴 장성들의 대다수는 운전병을 따로 두지 않고 스스로 운전한다.

장교라도 하급자가 상급자의 커피까지 타는 게 익숙한 우리와는 정반대 현실이다. "한국의 중립국감독위원회에 파견 온 북유럽 장군들이 무조건 대우해주는 한국 군대 문화를 처음 접하고 적잖이 놀란다"고 스웨덴 국방부 관계자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통념과 달리 민주적이고 의견개진이 자유로운 열린 군대는 전력을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강화시킨다. 병사 개개인에게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부여하면 임무수행 능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군대문화 개선, 군 인식 제고 등 다방면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낸다고 선진국 징병제 군대는 보고 있다.

코프멜 소위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일방적인 명령보다는 의견수렴과정을 통해 소대 구성원들의 의견 차이를 좁히는 것이 실제 임무를 수행할 때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 제1전차여단장인 프란스 나거 준장도 "위에서 일방적으로 하달되는 명령은 행동은 신속할지 몰라도 임무 목적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반감을 가질 수 있어 효과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펠레크 CEO는 "아무리 군대라도 상명하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독(毒)이 된다"며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향후 계획과 주어진 임무수행 방법 등을 고민하고 파악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상황이 급변하는 전시(戰時) 상황에서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열린 군대에 기강 해이는 없었다. 군대조직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활발히 토론할 때 더 강해진다.

스톡홀름(스웨덴)ㆍ빈(오스트리아)=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예루살렘(이스라엘)ㆍ툰(스위스)ㆍ타이페 변태섭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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