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이 9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 사유로 공개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보도자료는 200자 원고지 16매 분량이다. 북한이 한 개인을 숙청하면서 구체적 내용을 적시한 것은 전례가 없다. 통일부 당국자도 "과거 숙청사례와 비교했을 때 이렇게 죄목을 상세히 밝히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해임 당시에는 "신변상 이유로 직위에서 해임한다"는 짤막한 언급이 전부였다. 장성택이 2004년 실각했을 때는 아예 발표 자체가 없었다.
통신은 종파(宗派) 행위, 부정부패, 여자문제 등 장성택의 죄목을 백화점식으로 열거했다. 그 중 으뜸은 "반당ㆍ반혁명적 종파행위"란 게 우리 정부당국의 평가다. 종파행위는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며 당에 반기를 드는 일을 말한다. 다시 말해 장성택이 북한의 최고존엄인 노동당 유일적 영도체계에 도전했다는 의미다. 북한은 지난 6월 39년 만에 노동당 '유일영도 10대 원칙'을 개정하며 '김일성ㆍ김정일 주의'를 당의 지도 사상으로 명시했다. 통신은 "사법검찰, 인민보안기관에 대한 당적 지도를 약화시키고 엄중한 해독적 후과를 끼쳤다"고 말해 장성택과 그 추종자들이 당의 영도를 위반했음을 지적했다.
북한 정치사에서 종파행위로 인한 숙청은 사실상 김일성 시대 이후 처음이다. 김일성 주석은 6ㆍ25 전쟁 와중인 1952년 허가이(소련파)를 필두로 이듬해 박헌영과 이승엽 등 남로당(국내파) 출신을 차례로 제거했다. 56년엔 이른바 '8월 종파사건'으로 불리는 대대적 숙청을 통해 김두봉, 최창익, 박창옥 등 반(反) 김일성 운동의 싹을 자르고 유일지배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김일성은 60년대 들어 자파 내 인물 숙청에도 나서 67년 갑산파, 69년 김창봉 민족보위상, 허봉학 군 총정치국장 등을 내몰았다. 이들에게 씌워진 혐의가 바로 '반당ㆍ종파행위' '유일사상 체계 문란'이었다.
다만 장성택 숙청은 김일성 시대와 배경을 달리한다. 50ㆍ60년대 당시 숙청은 김일성이 1인 독재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정적 제거 성격이 강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일성은 여러 노선이 대립하는 집단지도체제의 정치적 메커니즘을 타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상을 내세웠다"며 "반면 70년대 이후 김일성ㆍ김정일 1인 지배력이 확립된 상황에서 반당ㆍ종파 혐의로 숙청된 사례는 장성택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장성택은 아울러 인민을 위한 경제사업을 방해하고 부정부패와 타락을 일삼는 파렴치한으로 묘사됐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해 4월 발표한 첫 '노작'에서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 지휘를 따를 것"을 명령했다. 지하자원을 중국에 헐값에 팔아 이권을 챙기는 등의 독직 행위는 김정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또 마약과 복잡한 여자관계 등 문란한 사생활도 '부르주아 사상 배격'을 명기한 유일영도 10대 원칙(4조)을 거스른 행위로 볼 수 있다.
대북 소식통은 "종파 혐의 하나 만으로도 숙청 조건이 충분한데 북한 당국이 장성택의 죄상을 일일이 나열한 것은 그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제1위원장의 고모부라는 상징성, 당ㆍ정ㆍ군의 인맥, 대외 지명도 등 막강한 위상을 감안할 때 모든 치부를 드러내야 북한 주민들에게 숙청의 정당성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양봉음위(陽奉陰違ㆍ앞에선 받들고, 뒤로는 딴마음을 품음)의 종파주의자'로 낙인 찍힌 장성택은 정치적 사망선고는 물론, 향후 신변의 안전도 자신할 수 없게 됐다. 당초에는 김 제1위원장의 고모부라는 점에서 목숨만은 보장받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그의 범죄행각을 공표하기 위해 이날 당 정치국 확대회의까지 열었다는 점에서 처형을 면치 못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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