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눈 감고 귀 막고 '민영화'라고 소리지르고 있습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코레일의 수서발(發) 고속철도(KTX) 법인 설립 추진에 반발해 총파업에 돌입한 9일, 코레일 관계자들은 질린 표정이었다. '수서발 KTX 법인=철도 민영화'라는 철도노조의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코레일은 5일 '수서발 KTX 운영에 관한 최종안' 발표로 민영화 논란을 깨끗이 해결했다는 입장이다. 코레일과 공공자금이 새 법인을 100% 소유하고, 지분 양도ㆍ매매 대상을 정부나 공기업, 공공기관으로 제한한 만큼 민(民)과 조금도 상관없다는 것. 코레일 관계자는 "이만큼 설명해도 못 믿으니 파업에 정권 퇴진 등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파업 이면엔 철도노조와 야당, 시민단체가 공유하는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그간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비밀리에 추진된 만큼 정부와 코레일의 어떤 얘기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반대에 직면해 결국 수정을 했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꼼수를 부린 사실이 속속 드러난 '4대강의 시즌2'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MB정권 당시 KTX 법인화는 곧 민영화를 의미했다. 지난해 3월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철도경쟁체제 도입을 위한 첫 설명회를 열었는데, 대기업 지분 비율을 49%로 설정했다. 반면 공공부문 지분비율은 11%에 그쳤다. 당장 "정부가 황금노선을 민간에 특혜를 주고 넘긴다"는 사회 각계의 반발과 4월말 철도노조의 총파업 결정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파업까지 가지 않았지만 MB정권은 KTX 민간개방의 동력을 잃었다.
잠복한 민영화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건 올해 6월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철도산업발전방안.' 이번 최종안의 모태가 되는 방식을 제시했지만 밀실 정책이란 비난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노선을 운영하는 주체를 굳이 두 곳으로 분산해야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남았다.
정부는 "독점에 안주한 코레일이 자구노력으로 경영혁신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하지만 노조는 "공기업과 공기업간 불필요한 경쟁이자 민영화를 위한 꼼수"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참여연대 등 218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철도공공성시민모임'은 이날 법인 설립 반대 성명을 냈다. "국토부 관료들이 시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밀실에서 민영화를 추진했던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박근혜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임기 동안 언제든 민영화를 강행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결국 불신과 불통이 문제인데, 시민모임이 제안한 사회적 합의기구 설치에 대해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업을 지연시키려는 술수"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불신만 깊어지고 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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