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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의 볼링그린 다이어리<38>교수님(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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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의 볼링그린 다이어리<38>교수님(Professor)

입력
2013.12.0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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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오기 전 미국의 랭귀지 스쿨을 한국의 영어 어학원 정도로 생각했다.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고 학교가 아닌 학원이니까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랭귀지 스쿨은 대학교에 입학을 원하는 국제 학생들(International students)을 위한 과정으로 총 9단계 프로그램으로 되어 있으며, 첫날 영어 시험을 봐서 레벨을 정한다. 매달 4과목의 프로그램을 단계별로 시험을 봐서 과목별 평점 75점 이상을 받아야 상위 레벨로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수업 시간 또한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운동만 해오던 나에게는 너무나 벅찬 시간들이었고 마지막 단계인 레벨 9에서는 기준 점수를 받지 못해서 두 번이나 탈락을 했다. 그래서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때 조성호 교수(볼링그린 주립대학)님이 하신 말씀을 깊이 새겼다.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면 더 마음을 내려놓고 한 발짝 뒤에서 봐야 한다.” 패스에 대한 욕심이 더 조급하게 만들어 결국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레벨을 한 단계 내려서 공부를 하고 3번째 도전 만에 랭귀지 스쿨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야구 이외의 일들은 쉽다고 생각했던 내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곳 랭귀지 스쿨을 졸업하게 되면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래서 조 교수님의 조언을 받아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전공은 ‘운동기능학(Kinesiology)’으로 야구선수들이 타격을 하거나 수비 또는 볼을 던질 때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에 운동 선택했다. 문제는 영어도 영어지만 수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수업시간보다는 운동시간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수학은 포기 아닌 포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기초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수학 수업. 첫날부터 ‘멘붕’이 시작되었다. 수학에서 쓰는 용어들을 영어로 듣다 보니 도무지 알아 들을 수 가 없었으며 문제가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빌(Bill)이라는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주 문제를 낸다. 그리고 정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를 시킬까 봐 눈도 안 마주치고 있는데 꼭 “제임스!” 하고 부르신다. 그러면 먼저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에 땀이 나며 입이 마른다. 그리고 답을 모르니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다시 묻는다. “정답은?” 그때서야 대답한다.

“I don’t know I’m sorry.”그러고 나면, 학생들에게 다른 문제를 주시고 나에게 오셔서 천천히 설명을 해 주셨다. 처음에는 너무 싫었다. 아니 왜 매일 나한테 질문을 하시는지, 매번 대답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예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숙제를 더 열심히 하기로 마음 먹었다. 보통 숙제 하는데 4, 5시간이 걸린다.

그러면서 조금씩 수업 시간에 적응하기 시작했으며 혹시 내가 답을 못 맞히더라도 교수님은 언제나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수학점수를 굉장히 잘 받았다. 그래서 빌 교수님에게 감사의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을 너무나 감사하게 보내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하고 싶다.

“Hi, James Lee, I realize we may have had some communication problems at times, but James you were the type of student that all teachers wish that they had. You definitely were one of the top highlights of my teaching career if not the best. Glad you enjoyed it as much as I did. I always looked forward to seeing you in class and am sorry it is now ending. You are a special person and as long as my memory allows you will always be thought of with the highest regards. Bill Dudgeon.”

처음에는 언어적인 문제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나 같은 학생은 선생님들이 원하는 학생이고, 교수님이 오래도록 나를 기억하겠다는 내용이다. 만약에 빌 교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수학은 전혀 할 수 없었을 것이며 중간에 포기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언제나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기 때문에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항상 어려운 시기에 조 교수님 이나 빌 교수님처럼 옆에서 도와 주시는 분들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항상 좋은 분들을 만나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인 것 같다. 볼링그린 하이스쿨 코치ㆍ전 LG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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