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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2월 9일] 스모그식별구역을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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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2월 9일] 스모그식별구역을 선포하라

입력
2013.12.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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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으셔야겠는데요."(의사)

"네?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중국 주재원)

"어? 그래요? 그런데 폐 사진이 왜 이렇게 뿌옇지?"(의사)

중국 베이징(北京)에 파견된 지 1년 반 된 주재원이 최근 건강검진을 받으러 한국에 갔다가 의사와 나눈 대화다.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이 40대 여성 주재원의 폐가 나빠진 원인은 딱 하나, 베이징의 스모그 때문이라는 게 본인 설명이다.

중국에서 사는 외국인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휴대폰을 열어 공기가 얼마나 안 좋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삼한사온이란 말에 빗대 삼청사탁(1주일 중 3일은 스모그가 없어 날씨가 맑지만 4일은 스모그가 심해 흐리다는 뜻)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스모그가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잿빛 독성 스모그로 사거리의 교통 신호등은 물론 손을 마주 잡은 연인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8세 여아가 폐암에 걸렸다는 충격적 뉴스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는' 수시로 스모그 상태를 점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만약 스모그가 심하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임기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주재원들에겐 위안거리였다. 그런데 최근엔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 스모그가 우리나라까지 점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2월 칼럼을 통해서 우리 정부의 중국발 스모그 대응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 일본은 중국에 스모그 방지 대책을 요구, 중일 당국자 회의까지 개최한 터였다. 우리보다 중국과 더 멀리 떨어진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보다 먼저 대응한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국가에 더 큰 일은 없다. 이는 모든 국가 기관의 의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중국발 스모그에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과연 국가와 국가기관이 한 일은 무엇인가.

더구나 앞으로 중국발 스모그는 수십년 더 악화할 수도 있다. 중국 스모그의 원인으론 ▦차량 증가 ▦석탄 난방 ▦저질 석유 제품 ▦공장 오염물질 배출 등이 거론돼 왔지만 최근 흥미로운 분석이 하나 더해졌다. 바로 '서부대개발의 역설'이란 지적이다. 지난달 내몽고 지역을 다녀 온 한 외교관은 "예전에 사막이었던 지역이 몽땅 공장지역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10여년간 중서부 지역의 경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사막과 황무지였던 이 곳이 중화학 공업 단지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스모그로 이어졌다는 게 이 외교관의 분석이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몰려 온 황사가 최근에는 뜸한 상태이다. 대신 그 자리를 스모그가 차지했다. 황사가 스모그로 바뀐 것이다. 중국의 공장이 문을 닫지 않는 한 스모그는 계속될 수 밖에 없고, 우리나라는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중국이 최근 일방적인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며 우리나라의 이어도를 포함시켜 물의를 빚었다. 이에 우리 정부도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으론 부족하다. 중국발 스모그 동향을 예의주시할 수 있는 '스모그식별구역'를 선포하고, 한반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스모그에 대한 정보는 공유토록 중국에 요청해야 한다. 중국 비행기가 우리 하늘로 들어올 때 통보토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중국발 스모그의 한반도 침공을 막는 게 더 급하다. 전자가 잠재적인 위협이라면 후자는 이미 현실화한 위협이다. 자체적인 예보 시스템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등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발상의 전환도 요구된다. 중국 스모그는 기회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스모그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환경 비즈니스 사업을 펼 수 있다면 중국이란 큰 시장을 열 수 있다. 우리보다 더 절박한 건 중국이다. 해결책을 공동 연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러한 협력은 한중 관계를 더 공고히 할 것이다.

무엇보다 청정 한국의 자산은 영원히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만 중국 주재원들이 돌아갈 곳이 있지 않겠는가.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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