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식경제와 실물경제의 괴리는 2009년 단행된 5차 화폐개혁의 모순에서 비롯됐다. 이 조치는 구화폐 100원을 신화폐 1원으로 바꾸는 액면 절하와 함께 세대 당 교환한도를 구화폐 10만원으로 제한하는 게 주 내용이다. 주민들의 보유 현금을 강제 몰수하는 사실상의 반 개혁ㆍ시장억제 정책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경제개혁 실패 과정을 들여다 보면 현재 북한 경제구조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위원장도 2002년 '7ㆍ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일부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내각 주도의 개혁에 노동당과 군부의 반발 등 체제 동요 움직임이 가열되자 2007년부터 시장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본격화했고, 가장 반동적 조치가 화폐개혁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당초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염두에 뒀다. 계획경제 틀 안에서 시장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묶어두자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시장화에 따른 부작용, 특히 최고 권력의 공고한 구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극구 경계했다. 전직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김정일은 개혁ㆍ개방이란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며 "자본주의 사조가 범람할 경우 체제 붕괴를 재촉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장이 군수경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북한은 당 산하에 군수산업을 관장하는 '제2경제위원회'를 두고 각종 군사장비 생산은 물론, 수출입 업무까지 전담시키고 있다. 북한의 경제 운영에서 군수경제 비중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선군사상을 표방한 2000년대 들어 군수산업을 경제발전의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당연히 경공업 중심의 소비재 생산은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역시 이런 이중경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6ㆍ28 방침을 통해 기업의 초기 생산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거점 개방을 대폭 확대하는 등 일부 진일보한 면도 엿보이나 정책 노선을 '경제ㆍ핵무력 건설 병진'으로 정한 데에서 보듯 여전히 세습 시스템의 굴레에 갇혀 있다. 여기에 북한과 정반대로 생산성 향상을 통해 시장을 촉진하고, 농촌이 시장 발달의 우위에 섰던 중국을 본뜬 '위로부터의 개혁'은 한계에 부닥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권위주의적 정치형태를 유지하더라도 개혁 엘리트들이 정책 주도권을 행사할 여지가 넓혀줘야 북한 체제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