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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 2부-군대를 바꾸자] <1> 잃어버린 청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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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 2부-군대를 바꾸자] <1> 잃어버린 청춘은 없다

입력
2013.12.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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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20대 청춘 남성을 2년 가까이 바깥 출입을 통제하면서 저임금 노동력으로 부리는 한국의 군대. 사회와 격리된 채 남성성이 극대화한 병영은 강압적인 상명하복, 뒤틀린 성별위계를 하릴없이 받아들인 병사들을 쏟아낸다. 이들은 사회 곳곳에 군대 문화를 전파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고수하면서도 복무자를 성장시키고 사회와 소통하며 국민의 지지를 받는 나라들이 있다. 국가 안보가 우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스라엘, 2015년부터 여성까지 징집 대상에 포함시키는 노르웨이, 올해 국민투표에서 징병제를 유지키로 한 중립국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3년 전 모병제로 전환한 스웨덴, 징병제 폐지를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는 대만 등을 찾아가 선진국의 군대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봤다.

"군대에서가 아니면 어디서 전차를 만지거나 고쳐 보겠어요? 군 복무 자체가 진귀한 경험이에요. 게다가 입대하기 전부터 했던 일(자동차 정비)을 이어서 하는 셈이니 사회로 돌아가서도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를 볼 일은 아니죠."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북동쪽으로 33㎞ 떨어진 소도시 슈미스발트의 징병센터. 이곳에서 만난 독일 폭스바겐사 소속 자동차 수리공 이프 바이에스빌(18)군은 2박3일간 징병검사를 마치면 결정될 주특기가 전차 정비병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민간 경력을 인정해 특기와 적성을 살리는 스위스 군 관행에 비춰 본 예상이다.

1848년 이후 165년 동안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스위스의 병역 제도의 장점은 의무 복무하는 병사들의 민간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군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징병 센터 6곳의 총괄 책임자인 레느 바우만 육군 대령은 "병사는 군 복무를 통해 자기 계발을 도모하고 군은 전문성을 확보해 상호 윈윈이 된다"고 말했다. 군 복무기간을 '잃어버린 청춘'으로 여기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군 복무가 기회

징병제를 선택하고 있는 선진국들은 병사들에게 성장 기회를 제공해 복무 동기를 부여하는 동시에, 군의 경쟁력도 끌어올린다. 대표적인 나라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다. 스위스는 지난 9월 22일 국민투표를 통해 징병제를 유지키로 결정했다. 1982년부터 징병제 폐지를 촉구해온 시민단체 '군대 없는 스위스를 위한 그룹'은 1989년과 2001년에 이어 세 번째로 폐지안을 투표에 부쳤지만 스위스 국민 73.2%가 반대표를 던졌다.

스위스 징병제가 이렇게 강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정밀한 적성 파악을 토대로 한 적소(適所) 배치에 있다. 예컨대 요리사 경력이 있는 병사는 취사병으로, 차량 정비공은 정비병으로, 정보기술(IT) 분야 종사자는 통신이나 컴퓨터시스템네트워크 담당자로 각각 발령하는 식이다.

거꾸로 군 경력도 고스란히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의무병으로 복무한 의대생은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로 일할 때 군 복무 기간을 근무일수로 산정한다. 병사 중 선발된 장교가 간부 교육을 이수하고 받은 수료증은 취업할 때 가점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위스 최고의 경영대학으로 꼽히는 상칼렌대 졸업 이수 학점 180점 가운데 10점을 대체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역시 올해 1월 20일 징병제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 59.8%로 징병제가 유지됐고, 그 뒤 대국민 여론조사를 벌여 병사들이 자신의 기술과 직업 전문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개혁 방안을 지난 6월 수립했다. 요한나 미클-라이트너 오스트리아 내무부 장관은 "현재 의무병의 60%에 달하는 행정병을 40%까지 줄이고 대신 더 많은 실무자들을 키우겠다"며 "이들이 입대 전 배웠던 지식과 기술을 군에서 더 연마해 제대한 뒤 직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의무병의 복무 기간이 6개월로 다른 나라들보다 짧은 오스트리아는 복무 기간 연장 유도를 위한 유인책으로 구직 지원 제도를 활용하기도 한다. 3년 간 복무한 병사에겐 제대 후 1년 간 매달 최종 월급의 75%(약 200만원)를 주면서 약 4,800만원의 직업교육비까지 얹어준다.

사회 속의 군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만난 갈 바르넬(26)씨는 군 복무기간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고교 졸업 직후 이스라엘군 공수부대에 입대한 그는 전역을 두 달 앞두고 대학에 가고 싶어 필요한 수업을 신청했다. 군은 강사를 초빙해 매일 오전 8시부터 저녁까지 수학 등을 가르쳤고, 바르넬씨는 대입에 필요한 점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히브리대에서 동아시아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군대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 학점을 인정해주는 '군 복무 중 원격강좌 학점이수제'를 시행 중이지만 주요 대학들은 참여하지 않아 학업과의 연계에 제약이 크다.

반면 선진국들의 군대가 복무자에게 '선물'이 되는 것은 군이 사회와 동떨어진 특수 집단이 아니라 사회와 발맞춰 발전하는 열린 조직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군의 모든 제도적 스탠더드가 맞춰져 있는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노르웨이에서는 군, 대학, 자격증시험 등 취업과 진학에 필요한 교육 과정들이 상호 호환돼 전기 부설이나 배관, 기계 정비, 차량 운전 등을 위한 국가 공인 자격증을 군대에서 무료로 따는 경우가 흔하다. 군이 제공하는 교육의 질에 대한 신뢰도 강하다. 노르웨이 국방부 산하 징병센터장인 페테르 뤼스홀름 육군 대령은 "기업들이 구인 면접 때 공식적인 가산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군대에는 왜 안 갔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사회 진출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육 기관으로 군대가 공인되고 있다는 의미다.

주이스라엘 국방무관인 이윤상 공군 대령은 "이스라엘군은 휴대폰 사용이나 장신구 착용, 외출ㆍ외박 등을 모두 용인한다. 불필요한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게 이스라엘 군대 문화"라며 "때문에 복무 기간이 길어도 병사들이 사회와 단절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외려 군에서 확보한 네트워크를 사회에 나가 사업을 할 때 활용하는 것이 예사"라고 말했다.

오슬로(노르웨이)·빈(오스트리아)=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텔아비브(이스라엘)·슈미스발트(스위스)=변태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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