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 against~'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비즈니스 용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Don't bet against~' 라고 하면 주식시장이나 환율시장에서 '~에 반대되는 투자를 하지 말라. 그러면 손해를 볼 것이다'는 의미다. 이를 정치적으로 확장하면, "~에 대항하지 말라" " ~와 겨루지 말라"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냉전 체제를 무너뜨리며 미국민의 애국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어록 중 하나가 "누군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실수 중 하나가 미국민들에 대항하는 것이다(one of the worst mistakes anybody can make is to bet against Americans)"다. 이 말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함께 이 질서를 거스를 경우 손해를 볼 것이란 주변국에 대한 경고도 깔려 있다.
미국 조 바이든 부통령이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접견에서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었던 적이 없다(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고 말해 논란이 됐다. 외교부의 해명대로 이 말은 바이든 부통령이 이전에도 수 차례 사용한 말이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7일 국회에서 "(한ㆍ중 관계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은) 미국식 구어를 이해 못하는 쪽에서 오해하거나 정확히 통역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은 이 말의 전후 맥락을 가리는 억지 해명이다.
바이든 부통령이 지난해 대선 유세 과정에서 이 문장을 꺼낸 것은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를 겨냥해서였다. 롬니 후보가 지분을 가진 펀드가 중국 기업에 투자를 한 것을 두고 민주당 캠프가 대대적인 정치적 공세를 펴며 '미국 반대편 베팅'을 거론했던 것이다. 정확히 대(對) 중국 관계를 고려하며 미국의 애국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만큼 이 표현은 정치적인 함의가 상당히 깔려 있다는 얘기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일극 체제가 중국에 의해 도전 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미국 정치인이 자국민에게 이러한 표현을 썼다면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그 말이 남의 나라 대통령 면전에서 사용됐다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큰 문제다. 그 진의에 추종외교를 종용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외교적 무례다. 외교부는 통역 탓을 할 게 아니라, 미국 측에 진중히 따져야 할 대목이다. 외교부가 이런 표현에 불편함을 못 느꼈다면, 어딘가가 마비돼 있다는 징후다.
송용창 정치부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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