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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물 원조의 반짝효과 NO!… '지원·수혜국 윈윈' 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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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물 원조의 반짝효과 NO!… '지원·수혜국 윈윈' 일구다

입력
2013.12.0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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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모작 가능한데 가공 못해 쌀 수입하는 현실서 출발농업·기초산업·ICT 분야 10가지 중점 육성 기술 결정자립에 초점… 小수력발전 등 중장기 계획 제시공무원들 점차 인식 변화… 우리 기업 진출에도 도움"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이 캄보디아에 수출됐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2011년 말부터 2년간 약 35억원을 투자한 결과다. 수혜국이 비용을 대거나 개별 기업 또는 기관 차원에서 진행된 개발도상국 대상 과학기술 원조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정부 예산으로 개도국에 무상 정책 컨설팅을 제공한 건 처음이다.

사업을 총괄한 황병용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ODA사업팀장은 "한쪽은 일방적으로 주고 한쪽은 무조건 받는 방식이 아니라 지원국(우리나라)과 수혜국(캄보디아)이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과학기술 정책 원조 모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현지에서 최종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온 황 팀장이 그간의 좌충우돌 체험기를 다음과 같이 생생히 들려줬다.

160cm가 채 안 되는 작달막한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 딱 봐도 한 고집 할 듯한 인상이 호감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남자가 우리 팀과 1년 반을 동행해야 할 ODA사업의 현지 팀 총괄책임자인 캄보디아 기획부 하스 분튼 부국장이었다. 지난해 7월 첫 대면했을 때만 해도 우리 도움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잘 베풀어주고 돌아가면 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기다리는 도움이 우리가 주려는 것과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야 했다.

캄보디아의 과학기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중장기 계획과 정책, 법적 기반이 필요하며, 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열심히 설명한 우리 팀에게 캄보디아 공무원들은 "더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달라"고 다른 요구를 했다. 당황스러웠다. 리나 홍 기획부 국장은 "차라리 그 예산으로 기획부 건물을 짓자"고, 분튼 부국장은 "중국이나 유럽은 자동차도 구입해 기증해줬는데, 한국은 왜 없냐"고 했다. 우리 제안을 반가이 받아들이고 잘 따라줄 거라고만 여겼던 건 큰 오산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우선 그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했다. 과장급 이상 공무원 10여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각 부처별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사업들을 추려 오게 했다. 그걸 놓고 위원회와 우리 팀이 함께 난상토론을 벌였다. 사업별 강점과 약점을 찾아내고 각종 통계자료를 분석하며 수개월에 걸쳐 농업과 기초산업, 정보기술(ICT)의 3가지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구축해야 할 10가지 중점 육성 기술을 결정했다. 우리에겐 일상적인 기획 절차지만, 캄보디아로선 낯선 과정이었다.

시급히 필요한 중점 육성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쌀 생산성 향상이다. 대부분의 땅에서 3모작이 가능한데도 이 나라는 쌀을 사 먹는다. 추수부터 도정, 탈곡, 보관 등의 가공 기술이 없어 다 키운 벼를 통째로 태국 등 주변국에 판 다음 가공된 쌀을 다시 수입하는 것이다. 그 과정의 손실이 얼마나 될지 집계조차 안 된다. 단순히 농기계나 신품종 지원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직접 농기계를 다루고 신품종을 수확해낼 수 있도록 사람을 키우고 기술을 보급하는 중장기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기초산업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의 주력으로 과거 섬유산업이 꼽혀왔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국에 비해 기술은 처지고 인건비는 비싸다. 경쟁력이 없으니 다른 분야를 육성해야 하는데, 산업의 기본인 전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일단 모두 수도 프놈펜으로 들어가고, 남아야 지방 몫이 돌아간다. 지역산업 발전은 엄두를 못 낸다. 중점 육성 기술의 하나로 그래서 소(小)수력을 선정했다. 개울처럼 낙차가 작은 물로 소규모 발전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지방마다 자체 전력 생산이 가능해지면 풀뿌리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프놈펜의 일부 엘리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1년에 평균 약 100만원을 번다. 하루 한끼 먹는 게 예사고,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이 의무인 데도 시험지 값이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못 보낸다. 과학기술 전담 부처는 물론 없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유학한 극소수 지도층 사이에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있지만, 그마저도 농업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미래는커녕 그날 그날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현실은 그들에게 충분히 팍팍하다.

그런 캄보디아에 외국의 일방적인 도움은 알게 모르게 독이 되고 있다. 중국이 기술이전은 제대로 안 한 채 지어주기만 한 대형 수력발전소는 중국인들이 떠나자 문을 닫아야 했다. 전기를 생산해 나오는 이익의 태반은 중국이 가져간다. 기지국 같은 무선통신 기반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태국 등 인접국에서 가져다 쓰다 보니 ICT가 국부를 유銖求?블랙홀이 돼 버렸다. 휴대전화를 걸면 걸수록 남의 나라에 돈만 퍼주는 꼴인 것이다.

캄보디아의 과학기술은 자립이 급선무다. 그러려면 탄탄한 계획과 제도부터 갖춰야 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미심쩍어했다. 과연 우리가 믿을 만한지, 중국처럼 이익만 챙겨가려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우리 팀은 10가지 중점 육성 기술의 세부 계획과 이들을 도출한 과정, 실행을 가정한 시뮬레이션 결과 등을 모아 올 여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열린 국제시스템다이나믹학회 때 발표했다.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전문성을 국제학계에 입증해 보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설득이 그들 속으로 점점 파고 들었고, 우리 팀은 덤으로 열정을 얻었다.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고 나니 그제서야 진짜 캄보디아가 보였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그들이 조금씩 속내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튼 부국장은 한 달 월급이 15만~16만원이다. 공무원 일만으로는 처에 아이 둘까지 건사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나라는 공무원에게도 '투 잡' '쓰리 잡'을 인정해준다. 오전엔 다른 일을 하고 오후부터야 나랏일을 본다. 그나마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이 이 정도니 일반 국민이야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손에 잡히는 현물 원조가 더 달가울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일방통행식 원조가 눈앞의 현실을 가려줄 수 있을지언정 후손의 미래를 보장하진 못한다.

내년 4월이면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과학기술 전담 부처가 출범하고, 법이 마련된다. 이를 바탕으로 10가지 중점 육성 기술이 2020년까지 추진된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 체계를 세우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성과라고 자평한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 따르면 많은 개발도상국이 해마다 10%씩 성장하고 있다. 반면 캄보디아는 수년 째 성장률이 7%대로 정체돼 있다. 이번 성과가 이 수치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많은 돈을 들여 굳이 왜 남 좋은 일 시키냐 탓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원국에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이번 사업에서 실제로 캄보디아 현지에 들어간 예산은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현지인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육하고, 국내 업체들의 현지 진출 기회를 만드는 등의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부분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현지에서의 마지막 워크숍을 마치고 나니 분튼 부국장이 슬쩍 자기 나이를 귀띔해줬다. 어릴 때 공산 치하에서 지냈던 캄보디아의 중장년층은 이력서에조차 진짜 나이를 적지 않는다. 캄보디아가 이제 우릴 믿게 됐다는 얘기다. 분튼 부국장은 내년에 쉰이다.

정리=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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