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이스라엘 경제중심도시 텔아비브의 벤처업체 얼리 센스(Early Sense) 사무실. 평상복을 입은 직원 6명이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다. 침대 밑 센서를 스마트 기기와 연결, 환자의 심박동ㆍ호흡수 등을 원격으로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침대'를 개발하는 첨단 벤처다운 격의 없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미국 벤처캐피탈이 1,500만달러(약 159억원)를 투자했고, 올해 4월에는 미국 플로리다템파종합병원이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이스라엘 기술의 저력을 확인시켜주는 업체였다.
놀라운 사실은 최고경영자(CEO) 아브네르 하퍼린(45)씨를 비롯한 핵심 직원들이 '경직된 조직'의 대명사로 꼽히는 군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하퍼린 CEO는 "같은 사물이라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혁신이 나오는데, 군 복무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다"며 "군은 '창업국가'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2004년 얼리 센스를 창업하기 전까지 하퍼린 CEO가 장교로 복무한 이스라엘 방위군(IDF) 탈피오트는 1979년 설립된 엘리트 부대다. 졸업 후 군에 입대해야 하는 이스라엘 고교생에겐 선망의 부대지만 상위 1% 학생 중 시험을 쳐 매년 50~60명만 엄선해, 가고 싶다고 아무나 가지 못하는 곳이다. 뽑힌 인재들은 히브리대에서 40개월간 물리ㆍ수학ㆍ컴퓨터공학 등을 공부한 뒤 과학학사 학위를 받고 소위로 임관, 방위산업 관련 연구개발(R&D) 업무를 수행한다.
복무기간이 9년이나 되지만 탈피오트 출신들에겐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탈피오트에서의 R&D 경험을 토대로 전역 후 대다수가 창업에 나서 이제는 이스라엘의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꼽힌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배터리 교환방식의 전기차를 개발한 베터플레이스, 포브스 선정 100대 기업 중 85곳이 쓴다는 통화감시장치 기업 나이스시스템 등이 모두 탈피오트 출신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명령에 복종하는 구성원을 키워내는 것이 군의 역할이 아니라고 믿는 덕분에, 가장 창의적인 벤처가 군에서 싹트는 것이다. 올해 6월 구글이 1조원 넘게 주고 인수한 모바일 내비게이션 업체 '웨이즈'도 IDF에서 위성항법장치(GPS)를 다루던 3명이 군 경험을 살려 전역 후 만든 기업이다.
하퍼린 CEO가 꼽는 탈피오트의 가장 큰 자산은 인적 네트워크다. "벤처기업은 리스크가 커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힘들지만 탈피오트 출신 네트워크를 통하면 전화 4, 5번만에 믿고 일할 만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일보가 취재한 선진 징병제 국가의 군에선 사회와의 단절이나 경직된 상명하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국가안보 수호의 임무를 수행했고 복무자들을 성장시켰다. 이들에게 군은 '청춘의 감옥'이 아닌 '새로운 기회'였다.
텔아비브(이스라엘)=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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