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입주작가들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국내외에서 선발된 젊고 패기있는 예술가들로서 이미 그들의 분야에선 고도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전문가들이다. 예술가가 아닌 필자를 초청한 이유는 단 한가지. 예술에서도 장르 간의 경계가 낮아지고 있고 더 나아가 예술을 넘어 타 분야, 특히 과학기술과의 융합도 이제는 예외가 아니라 보편화되는 시대에 예술가들은 과학기술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활용할 능력을 갖춰야 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장르가 합쳐지거나 장르를 넘나드는 것은 비단 미술만은 아니다. 공연예술에서도 크로스오버, 퓨전국악, 퓨전재즈, 팝페라 등의 용어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다.
사실 문화예술에서의 융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오페라는 서구의 시민계급이 생겨나면서 확산된 융합형 예술이다. 그 전까지 음악과 시와 춤은 별개의 장르였다. 여러 장르를 혼합한 오페라는 악기의 발달에 힘입어 그 당시로는 첨단 융합형 예술로 인식되었다. 세월이 흘러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도시로 인구가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했고, 이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차세대 첨단 융합형' 예술이 고안되었다. 바로 서커스이다. 20세기 중반까지 각광을 받았던 서커스는 얼마 전까지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서커스에는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스토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캐나다에서 시작한 '태양의 서커스단'이 기존의 서커스에 순수 공연예술과 영화적 스토리를 융합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미 라스베이거스에 동시에 3개 작품을 올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20세기 들어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융합형 예술은 단연 영화다. 종합예술인 영화는 이제 첨단과학기술을 흡수하면서 명실공히 융합 블랙홀이 됐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떤 융합형 예술이 등장할 것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영화와 비디오 게임 중간 형태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과학에서도 융합이 대세이다. 요즘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평소에 잘 들어보기 힘든 단어인데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기존의 학문 분야에서 잘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을 인접한 분야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 보자는 것이다. 물리학계에서는 날씨와 여자의 마음은 절대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농담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물리학적으로만 접근하니까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날씨 예측은 물리학과 수학과 전산학의 융합으로 웬만큼 가능해졌다. 여자의 마음도 융합적으로 접근한다면 예측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융합은 예술과 과학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융합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시대적인 조류이고 사회적 현상이다. 오죽하면 모 자동차회사의 "딱딱한 질문 하나 드릴께요. 융합이란 도대체 뭘까요?"라는 CF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먹히는가 말이다. 이렇게 융합이란 키워드가 시대조류가 된 배경에는 디지털의 영향이 크다. 디지털 기술을 빌리면 모든 것이 0과 1로 표현될 수 있다. 일단 성질이 판이하게 다른 것들이 0과 1로 바뀌면 이들을 서로 합치는 것은 훨씬 수월해진다.
문화예술, 과학기술,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융합은 우리 시대의 키워드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는 아직 준비가 잘 안돼 있다. 어려서부터 이과와 문과로 나뉘어 교육을 받았고 흑백 논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 우리 편과 다른 것은 나쁜 것이고 따라서 배척하거나 제거해야 된다는 논리가 마음 속 깊이 잠재돼 있다. 융합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포용력,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방성, 타 분야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이는 어릴 적부터 교육 시스템에서 길러 줘야 한다.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융합의 시대에 걸 맞는 문화예술, 과학기술, 사회전반에서 균형있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융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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