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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9일] 쓰지 못한 격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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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2월 9일] 쓰지 못한 격려사

입력
2013.12.0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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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L의 딸은 맹학교를 다닌다. 아이는 몇 차례 각막이식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시력을 얻지 못했다. L이 아이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그대로 끌어안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전 L이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애 학교에서 교지를 만드는데 말이지, 학생도 학부모도 많지가 않잖아. 격려사 같은 게 들어가야 하는데 엄마 대표로 나보고 쓰라는 거야. 뭐라 쓰지?" 머리를 쥐어뜯다가 전화를 한 거라 했다. 글 쓰는 친구를 뒀답시고 SOS를 친 것인데 뭐 나라고 딱히 생각나는 게 있나.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랑 같이 점자 배웠다며? 아이는 손끝으로 읽고 너는 눈으로 읽으니, 같은 점자지만 다른 느낌일 거라 하지 않았어?" 그러자 L은 돌연 목소리에 생기를 띠며 겨우 6개의 점으로 세상 만물과 느낌을 표현하는 점자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한참 이야기했다. 점자로 타자치는 방법도 설명해 주었다. "그런 얘기 써봐. 훌륭한 글감인데?" 나의 성급한 반응에 L은 다시 시무룩해졌다. "너나 나한테나 대단해 보이지. 우리 애들한테야 점자가 일상인데 무슨 격려가 되겠어?" 역시 엄마의 마음은 다르구나 싶었다. 아이들의 입장에 선 격려, 아이들의 손끝을 통해 찌르르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는 격려, L은 그런 말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쉽게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눈으로 읽는 어른이, 손끝으로 읽는 아이들에게, 어떤 깊은 격려를 전할 수 있을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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