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통상외교 행보가 갑자기 빨라졌다.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호주(3년 6개월) 및 캐나다(5년 8개월)와 자유무역협정(FTA) 공식협상을 지난달 각각 재개하더니, 세계 최대 경제블록을 탄생시키게 될 메가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관심 표명' 입장을 밝혔다. 말이 관심 표명일 뿐, 사실상의 참여 발표나 다름없었는데 TPP 관련 첫 공청회를 한 지 불과 2주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5일 정부는 호주와의 FTA가 실질적으로 타결됐다고 선언했다. 협상 재개 이후 양측이 머리를 맞댄 횟수는 딱 두 차례뿐. 캐나다와의 FTA 협상도 많은 진전을 이뤄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일사천리, 속전속결, 전광석화다. 통상 현안에 대해 너무도 '신중 모드'로 일관했던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치밀한 검토의 흔적도, 충분한 여론수렴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부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 갑작스레 가속 페달을 밟는 것처럼 보인다.
한ㆍ호주 FTA의 최대 쟁점이었던 쇠고기 개방 문제의 결론을 보면 이런 조급증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부는 "한ㆍ미 FTA보다 좋은 조건으로 막아냈다"고 자평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매년 2~3%씩 관세 인하, 15년 후 완전 철폐'는 원래 호주가 "한ㆍ미 FTA 수준을 원한다"며 내건 조건이었고, 정부는 그보다 장기적인 관세 스케줄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 왔다. 그런데 이번에 입장을 바꿔 호주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동차 수출을 위해 쇠고기를 포기했다"는 지적이 타당한 이유다.
따지고 보면 모든 원인은 결국 TPP다. 최대 경쟁국인 일본이 올해 TPP협상 참여 결정을 하면서 그 동안 동향 파악에만 주력했던 한국 정부도 '급해진' 것이다. 그러나 미루고 미루다 관심을 표명하니 TPP협상을 주도하는 미국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TPP 견제대상인 중국은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낄 법하다. 또, 산업별 득실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도 턱없이 부족하고, 공론화 작업도 이제서야 시작됐다. 게다가 통상 관료들의 비밀주의ㆍ일방주의 논의 방식도 여전하다. '욕속부달(欲速不達ㆍ급히 서두르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이라는 고사성어를 되새기면서, '막판 과속'을 하기보다는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김정우 산업부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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