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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방공구역 중재자 역할에 한계

입력
2013.12.0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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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에서 한중일 3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갈등 중재자로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강경 대응이 현상 변경에 반대하는 미국의 역할을 퇴색시키고 있다. 하지만 보다 큰 이유로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거나 한중일을 설득할 명분을 갖지 못하고 있는 점이 거론된다.

미국이 중국의 ADIZ 확대 조치에 처음 내건 반대 명분은 항행의 자유였다. 항행의 자유는 관습법으로도 인정되지만 갈등 조정을 포함한 상세한 내용은 유엔해양법에 규정돼 있다. 1992년 발효된 이 협약에 한중일을 포함, 162개국이 가입해 있으나 미국은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법을 통한 조정자 역할에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미국은 이후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다른 논리를 내세웠다. ADIZ는 주변국과의 협의를 거쳐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일방적 조치는 과거 미국의 ADIZ 설정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 이 역시 명분이 약하다.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 해안 안보를 위해 ADIZ를 일방적으로 선포했으며 한국과 일본의 ADIZ 역시 미국의 선 긋기에서 비롯됐다. 이런 측면에서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대국으로 가려는 중국이 미국을 따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새로운 명분은 ADIZ에 진입한 모든 항공기에게 비행계획 통보를 요구한 중국 조치가 자국 영공 진입시에만 통보토록 한 국제규범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 미국이 중국 ADIZ 설정에 반대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조건부 인정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이 "문제는 중국의 ADIZ 선언 자체가 아니다"고 말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이에 백악관이 5일(현지시간) '오해'라며 부인하고 나섰지만 중국 ADIZ 조치의 철회가 아닌 불인정을 미국의 원칙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최종 입장 정리자로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입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으나 그는 사태가 발생한 지 2주가 되도록 침묵하고 있다.

중국의 추가 조치가 예상되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입지는 더욱 좁다. 지난해 4월 베트남과 중국이 난사군도 영유권을 놓고 대립할 때 미국은 중재에 실패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동맹국도 아니고 갈등조정의 근거인 유엔해양법 협약을 언급할 자격도 없었다. 필리핀이 스카보러섬 등의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대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방위조약상 필리핀 선박이 공격 당하면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중국을 압박하는데 그쳤다. 결국 필리핀은 미국에 기대지 못하고 유엔국제해양재판소에 중재신청을 내는 것으로 중국에 반발했다. 이런 한계를 경험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지난해 5월 의회에서 유엔해양법 미가입으로 남중국해에서 동맹국 주장을 지지하는 논리가 약해진다며 협약 비준을 호소했다. 리언 패네타 전 국방장관도 동아시아 해양에서 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무기'로 협약 가입을 요청했다. 의회는 이 경우 오히려 미국의 주권이 침해된다며 비준에 반대하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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