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씨는 3월 한화생명에 아내의 사망보험금 1억2,000만원을 청구했다. 아내가 탄 차가 부산 해운대 앞 바다에 빠져 아내가 숨졌다는 게 이유였다. 현장을 확인한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은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다. 사고현장이 차량통행제한구역이고, 차 트렁크에 2ℓ짜리 생수통 수십 개가 가득 들어있었던 것. 박씨가 범행 직전 아내 명의로 여러 개의 사망보험에 가입한 사실도 수상했다.
SIU는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조사결과 보험금을 노린 박씨가 지인에게 운전을 시켰고, 지인은 박씨의 아내와 함께 탄 차량을 고의로 바다에 빠트린 뒤 혼자 빠져 나온 사실이 드러났다.
보험범죄가 지능화하면서 보험회사 SIU는 주요 부서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의심이 가는 보험 청구 건에 대해 수사를 한 뒤 경찰에 신고한다. 현장조사는 기본이고, 병원진료기록 등 자료분석에서 밀착감시까지 활동범위가 경찰 못지않다. 실제 팀 구성원들도 전직 경찰 출신이 많다.
특히 범죄현장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위험한 상황도 곧잘 발생하는 탓에 금녀(禁女)의 구역으로 불린다. 업계 통틀어 SIU 인원은 약 400명. 이중에서 여성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 틈을 비집고 SIU에 합류한 여성 3인이 한화생명 SIU의 우인선(34) 강혜진(33) 조자영(31) 매니저다. 현재 한화생명 SIU 팀원 28명 중 여자는 이 셋뿐이다.
이들에게 범죄현장 조사에 24시간 밀착감시는 기본, 위장도 해야 하고 조직폭력배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병원 의무기록사로 일하다가 보험사기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의무감이 생겨서"(우인선) "보험계리사 공부를 하다가 현장 업무를 경험하려고"(강혜진) "전공은 수학이지만 비상한 데이터 분석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조자영)라고 제각각 답했다.
사실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일하자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밀착감시에 나설 때면 밤샘 근무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 경찰 등을 상대할 때는 말투도 호탕해진다. 치마를 입는 건 1년에 한두 차례. 잦은 회식자리에 주량도 크게 늘었다.
일도 험하다. 밀착감시를 하다 들켜 줄행랑을 친 적도 있고, 사무실로 조직폭력배들이 들이닥쳐 보험금을 내놓으라고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우씨는 "온몸에 문신이 그려진 조직폭력배들이 욕설을 퍼붓고 사무실을 뒤엎을 때도 있다"고 했다.
반면 여성이라 유리한 점도 상당하다. 조씨는 "의심 고객을 추적할 때 남성들끼리 있으면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무래도 여성이 끼어 있으면 경계심이 덜해 추적하기 편하다"고 했다. 강씨도 "조사를 하다 보면 여성이어서 경찰 협조가 더 쉬울 때도 있고, 고객들도 편안하게 다가온다"고 덧붙였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예컨대 나일론 환자(보험금을 노리고 필요 이상으로 장기 입원하는 환자)를 잡아내려고 1년치 입원 달력을 만들어 혐의를 입증해냈다. 70대 당뇨 할머니가 소변을 바꿔 병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한 뒤 1억5,000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도 과거 병원진료기록 등을 샅샅이 뒤져서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안타까운 사연도 그득하다. 이들은 보험사기로 적발돼 교도소에서 반성을 한 뒤 "괴롭혀서 미안하다"는 편지를 보내오는 사기범들이 꽤 있다고 했다. 애꿎은 피해를 당한 아이를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우씨는 "아이를 입양해 아이 앞으로 보험을 여러 개 든 다음 아이를 병에 걸리게 해 보험금을 타낸 나쁜 부모를 조사한 적이 있다"며 "부모는 사기죄로 기소됐지만 죄 없는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조씨도 "부모가 돈 욕심에 멀쩡한 딸의 무릎을 수술한 뒤 보험금을 탔는데, 건강했던 딸이 수술 이후 복합통증증후군으로 중병에 시달리게 됐다"고 마음 아파했다.
의외로 가족들은 든든한 조력자다. 셋 모두 손해사정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만났다. 손해사정은 조사내용을 분석, 정리해 손해액이나 보험금의 적정가격을 결정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 SIU에 대한 업무 이해도가 높다.
우씨는 "나일론 환자가 많아 아예 병실이 텅 빈 병원을 알려주는 등 남편이 나의 정보원"이라고 웃었다. 강씨도 "처음에는 보험회사에 취직했다고 하니까 가족들이 보험 가입하라고 할까 봐 피하더니 요즘에는 보험사기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셋은 보험범죄가 늘어나면서 SIU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씨는 "'내가 아파서 입원하겠다는데 보험금 지급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식의 태도, 고작 벌금만 내면 되는 보험범죄에 대한 약한 처벌이 보험범죄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수사권이 없는 점도 한계다. 조씨는 "보험범죄를 적발해도 경찰에 의뢰해야 하고, 재판과정에서 SIU가 조사한 증거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혐의 입증을 위해 사진촬영을 하면 초상권과 사생활보호법 위반 등으로 간주돼 증거 수집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2,57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3%나 증가했다. 이중 보험회사가 적발한 액수가 2,102억원으로, 대부분의 보험범죄를 보험회사에서 잡아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녀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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