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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은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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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은 스포츠다

입력
2013.12.0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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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나라(Rainbow nation).

이름만 보면 눈부시고 화려한 국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무지개 나라는 다민족, 다문화가 뒤섞여 있지만 소수의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차별해 수십 년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1964년 도쿄대회부터 남아공의 올림픽 출전을 불허하기도 했다.

궤도수정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남아공 흑백 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마침표를 찍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95세의 일기로 5일(현지시간) 타계했다. 그의 행적에 대한 외신 보도가 하루 종일 쏟아졌다. 특히 27년에 걸친 독방 수감생활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자연스레 언론들은 만델라의 가시밭길 정치 투쟁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만델라가 인류에게 남긴 메시지는 평화와 화합이다. 만델라는 남아공 정권을 인수한 뒤 백인에 대한 보복금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평화를 이뤘고, 흑백 화합은 스포츠를 통해 완성했다. 미 스포츠 전문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이날 '만델라야 말로 진실로 스포츠의 힘을 아는 지도자'라고 극찬하며 '만델라는 스포츠를 통해 국민을 통합시켰다'고 평가했다.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는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월드컵. '스프링복스'라고 불리던 남아공 럭비대표팀은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절대 강자 뉴질랜드를 15-12로 꺾고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6만3,000명의 관중 대부분은 백인들이었다. 소수의 흑인 관중들은 상대팀을 응원할 정도로 흑백갈등의 골은 깊었다. 오히려 스프링복스의 초록색 유니폼은 흑인들에겐 증오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만델라는 초록 유니폼을 입고 나와 주장인 백인 프랑수아 피에나르(46)에게 우승컵을 건넸다. 피에나르는 "우리는 6만3,000명이 아닌 남아공 전체인구 4,200만명의 응원 속에 경기를 마쳤다"고 말했다. 만델라는 "감사하다"며 그를 끌어안았다. 피에나르는 이어 "만델라는 스프링복스가 남아공을 위해 우승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나라를 위해 한 것에 비하면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장면은 2009년 할리우드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Invictus)'로 태어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축구다. 만델라가 옥살이 와중에도 축구팀을 운영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만델라는 수감 첫 해부터 22명의 선수를 보유한 '구단주'였다. 무작위로 선발된 팀이었지만 차츰 틀을 갖추기 시작했고, 국제축구연맹(FIFA)의 룰을 지켰다. 그는 축구를 통해 국민통합을 꿈꿨던 것이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퇴임 후에도 식지 않았다. 그는 2004년 '2010 남아공 월드컵 개최권'을 따낼 때 직접 프레젠테이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만약 노벨 스포츠상이 있다면 제1호 수상자는 만델라의 몫이 아닐까.

350년에 걸친 아파르트헤이트도 만델라의 리더십으로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에 비하면 남북 분단 60년은 하루 아침의 여정이다. 이 땅에서도 스포츠의 진정성을 통찰하는 지도자가 보고 싶다.

스포츠부 최형철 차장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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