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라카공화국 대통령이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남아공은 물론 세계 각지의 추모ㆍ애도 물결 속에서 함께 옷깃을 여미어 명복을 빈다. 아울러 한 시대를 대표하는 '행동하는 양심'이자 세계적 정치지도자가 찍어온 발자국을 또렷이 되새긴다.
남아공 원주민의 하나인 템부족 추장 가문 출신인 그는 대학 시절 반식민 운동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참여, 청년연맹 창립회원으로서 역사의 격랑에 뛰어들었다. 1952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ANC의 대규모 저항운동을 통해 명성을 얻었고, 55년 ANC 트란스발 지부 의장이 되었다. 백인정권의 감시와 탄압은 집요했다. 그는 56년 반역죄 혐의로 기소됐다가 풀려났고, 62년에는 같은 혐의로 5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도주했다. 그러나 64년에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 받고, 90년 석방 때까지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오랜 투옥에도 그의 저항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그에 대한 흑인들의 지지는 더욱 커졌다. 잇따른 흑인 봉기와 정치ㆍ경제 제재 등 국제사회의 대대적 압력에 떠밀린 백인정권은 90년 2월 그를 전격 석방했다. 4년 뒤 흑인을 포함한 최초의 보통선거에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99년 퇴임한 이후로는 국제평화운동과 에이즈환자 지원 등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위대함은 혹독한 탄압과 인권유린의 가해자들과의 화해를 통해 남아공을 온전한 흑백통합사회로 바꾼 데서 비롯한다. 대통령 취임 후 그는 백인민족주의자 세력인 국민당과의 협상을 통해 '국민통합ㆍ화해 촉진법'을 제정하고, '진실ㆍ화해위원회(TRC)'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과거의 인권유린 진상을 밝혀 피해를 보상하고 가해자를 청문회에 세웠지만, 공개적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한 가해자는 과감히 사면했다.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남아공이 이룬 역사화해와 사회통합이 칠레나 아르헨티나 등 다른 민주회복 국가에 좋은 본보기가 된 결과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지역ㆍ세대ㆍ계층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사회가 깊이 음미해야 할 만델라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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